한국인의 밥상 입맛을 가진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음식 취향을 가진 남편을 만나,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딸 하나와 다국적 입맛에서 한국인의 밥상 입맛으로 돌아오고 있는 아들 하나를 낳았다.
이 말인즉슨 우리 가족은 먹고사는 데 있어서는 서로에게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로또라는 이야기.남편은 피자, 타코, 파스타, 햄버거를 너무도 사랑하여 혼자 먹는 끼니로 여직도 그것들을 즐겨 먹고 있고, 딸아이는 빵과 디저트류를 좋아하는 데다가 음식을 천천히 오래 조사먹는 스타일로 한 시간 가까이 식사를 하다 보니 저 혼자 프랑스의 어느 가정에서 느긋한 코스 요리를 즐기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마저 일으키곤 한다. 장금이 뺨치는 절대 미각을 가진 아들은 맛잘알로서 국적을 불문한 식재료와 요리들의 맛조합을 발견해 내는 어린 식신의 면모를 보이다 이내 엄마의 입맛을 따라 김치 없이 못 사는 한국인의 밥상 입맛으로 변절했지만 상당한 기분파로 여전히 그때그때 당기는 음식의 스펙트럼이 넓디넓다. 한마디로 메뉴의 선정에서부터 먹는 내내 총체적 난국.
단순히 식사 메뉴 선정에서 극적으로 통일이 되었다 하더라도, 들어간 재료나 원하는 맛의 조합, 브랜드의 취향까지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 4인 가족의 실상이 이러하니 남북통일의 길이 멀고도 험한 듯도 싶고, 식사를 준비하는 형국이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그럼에도 남편과 딸, 아들에 대한 사랑을 공평하게 실천하려 하루는 이 사람의 입맛에 맞추어, 하루는 저 사람의 취향을 반영하여 식사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방학도 막바지에 접어들어 어깨춤이 절로 난다. (금요일 개학! 소리 질러~~)
올여름 삼 시 세끼 밥을 해대기엔 정말로 무더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족들이 좋아하여 자주 하는 음식의 메뉴가 한정적이다 보니 세끼를 돌려 막기엔 한계가 있어 하루 한 끼 정도는 한국인의 밥상을 포기하게 되었다. 보수적인 한식 요리사가 현실적인 여건에 의해서(자의 반), 그리고 다른 입맛을 가진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해(타의 반) 타협한 것.
최근은 간편하게 요리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피자에 빠져 있다. 살면서 생일에나 한 번 시켜 먹을까 말까 했던 피자를 내 손으로 만들어 먹는 날이 오다니. 아이들 어릴 때 최애간식 메뉴로 꼽혔던 식빵피자로 시작된엄마표 피자의 역사와 이 역사 속 주인으로 살게 된 피자 장인의 삶이 꽤 만족스럽다. 정보의 바닷속에 다양한피자 레시피들을 손쉽게 낚았겠다 가족들 취향에 맞게, 보다 건강한 버젼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으니 엄마표 피자의 역사는 유구해질 일만이 남은 것인가?
식빵 피자
아이들 어릴 적에 간식으로 해주곤 했던 식빵 피자. 식빵 피자는 말 그대로 식빵에 만드는 피자로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파프리카, 햄, 옥수수, 양파를 잘게 썰어 올려 모짜렐라 치즈를 듬뿍 뿌리는 피자다. 쭉쭉 늘어나는 모짜렐라 치즈를 좋아하는 남매의 취향을 반영하여 듬뿍 뿌리는 것과 아삭한 식감을 느낄 수 있게 야채도 듬뿍 넣어주는 것이 포인트다. 에어프라이어 185도 온도로 8, 9분 정도 구우면 끝. 한동안은 매일 먹고살고 싶다 할 정도로 아이들이 좋아했고, 한 번 해주면 두 쪽은 너끈히 해치우고도 리필 요청이 쇄도했던 피자. 시판 토마토소스를 사용하다 보니 손쉽게 뚝딱 만들고, 로제 소스냐- 아라비따 소스냐에 따라 여러 버젼을 만들 수 있어 가족들이 그때그때 먹고 싶어 하는 맛으로 후딱 요리가 가능하다.
문제는 간식이 너무 든든하여 주식사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 탄수화물의 비중을 줄이고, 다른 영양소의 비중을 늘리려 식빵 대신에 또띠아를 도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띠아 피자는 건강한 피자의 시작이었다. 더불어 시판 토마토소스의 성분표를 보고 조금 더 건강한 피자를 구현하고자 첨가물 없는 토마토페이스트에 입문했다. 시판 소스에 비해 조금 라이트한 맛이다 보니 더 꾸덕한 맛을 내고자 다짐육을 같이 볶아 소스로 발라준다. 깜빠리 토마토나 방울토마토를 슬라이스로 야채들과 함께 더 올리니 건강한 간식용으로 제격. 때때로 아이들은 가끔 식빵 테두리의 바삭한 맛을 그리워해 식빵 피자를 만들어주곤 하지만, 건강한 식빵 피자를 먹이고 싶은 마음에 번거롭더라도 작은 수고들을 마다않게 된다.
또띠아 피자
신랑과 내가 요즘 빠져있는 피자는 최화정 유튜브에 소개된 시금치 토마토 플랫 피자. 또띠아를 구워 그릭요거트소스(그릭요거트:마요네즈:아가베시럽=2:1:1, +소금&후추갈갈)를 듬뿍 발라, 그 위에 시금치와 방울토마토슬라이스를 듬뿍 올리고, 밑간 한 고기(육식동물인 우리 가족은 고기를 포기 못하기에..)를 구어 같이 올린다. 마지막으로 파마산 치즈를 그라인더에 슥슥 갈아 소복이 올려주면 끝. 상큼, 담백하면서도 중간중간 씹히는 짭조름한 고기와 치즈의 풍미가 중년 부부와 프랑스 가정식에 어울리는 딸아이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한국인의 밥상으로 변절한 아들은 첫 마음 그대로 식!빵!피!자를 외치니 변절자도 피자에 있어서는 꽤 지고지순한 사내아이인 것 같다.
시금치 토마토 플랫 피자
건강 피자의 최후는 요즘 엄마의 주식으로 삼고 있는 단호박을 베이스로 하여 고소한 견과류와 토마토소스, 치즈를 올린 단호박 견과류 피자에 까지 와 있다. 단호박 킬러인 나와 딸의 입맛에는 건강하면서도 근사한 맛인데 아들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으로 보아 맛있는 맛의 조합을 찾아내기 위한 연구와 추가 보완이 더 필요하겠다. 입이 짧아 삐삐 마른 가냘픈 몸으로 온 가족의 근심이 되곤 했던 딸아이가 오래도록 앉아 단호박 피자를 혼자 우걱우걱 퍼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근심도 요리도 다 한때이지 싶다. 단호박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아들을 생각하면 단호박 견과류 피자는 딸과 둘만의 피자로 남겨두고 새로운 피자를 시도해 보는 것이 빠를 것도.....
연구가 더 필요한 단호박 견과류 피자
엄마표 피자의 역사는 가족이 사랑하는 메뉴인 피자를 붙들고, 그들에게 보다 건강하고 맛있는 피자를 먹이고자 여러 시도와 노력을 이어온, 엄마의 사랑이 담긴 노고의 역사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오늘 간식으로도 단호박 견과류 피자를 배 뻥~하게들 드셨겠다 이제 학원으로 보낼 참에엄마표 피자의 역사를 기록해 본다. 두 시간 앞으로 다가온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이 실화인지 두 눈을 비비며.
'요리'라는 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가 다시 '무'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가끔은 허무하고 귀찮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식사를 준비하면서부터 맛있게 먹고 정리하기까지 '하는 사람'의 정성과 사랑이 담겨있어 더 가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항시마음에 두려 한다. 지금까지 내가 받아온 수많은 요리들 속의 그것들을 기억하며, 부디 내 가족들 또한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긴 음식들을 먹고 그리는 삶들을 꾸려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요리로써 응원하는 엄마 오늘도 파이팅을 외친다. 파! 이! 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