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남매의 크리스마스 소원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by 세일러 문


누나,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뭐 받고 싶어?



아드님이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를 꺼낸다. 아맞다 크리스마스, 우리 집 산타는 현생에 허덕이며 선물고민과 준비도 벼락치기로 할 예정이라는데... 산타의 존재를 믿는 자에게만 산타가 다녀간다는 엄포에 열한 살- 열두 살 남매는 동심을 잃지 않은 메소드 연기를 선보이며 산타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고 있다.


믿는 내 자식 도끼에 올해 몇 번의 발등을 찍혔던가. (엄마는 다 기억하고 있단다. 엄마 발등 무사한 것 맞니? 너덜너덜해진 느낌은 기분 탓?) 크리스마스이브날 밤에 산타가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러 다녀가신다는 것을 알고, 시즌에 임박해서라도 착한 아이가 되어보려 애를 쓰고 있는 십대 아이들이 귀엽다. 진즉에 알아버린 산타의 존재에게 선물을 받아보려 애써 믿는 척하는 아이들이 처연하기도 하고 말이다. 진정으로 산타의 선물을 받을만한 2023년을 살았는가. 주기적으로 널 뛰고 있는 사춘기 호르몬 탓에 두 녀석은 엄마의 기준에 꼭 착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내년에는 착하게들 살라는 바람을 담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해야겠구나, 생각한다.


"웹툰을 그려보게 태블릿을 받고 싶다."


햇님이는 무심하게 툭 내뱉는다. 곁에 있는 산타가 듣고 있는지 안 듣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선물을 급조할 엄마산타는 신경이 쓰인다. 그러자 옆에서 한 마디 거드는 아들,


"와, 누나, 너무 고가 아니야? 나는 이미 루루가 내 선물이고, 양심 있게 저렴한 걸로다가 소원을 빌어볼 예정이라구!!"


산타의 지갑사정마저 헤아리는 아들의 아량, 너 이녀석 정말 착한 녀석이로구나. 그렇지만 12월이 됨과 동시에 현질쿠폰을 산타 선물로 받고 싶다며 노래노래를 부른 아들의 소원을 모른 척하고 싶기에 애미의 마음은 석연치 않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크리스마스를 어찌 보내야 의미가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그저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었던 시절엔 밤 사이 착한 너희들에게 산타가 다녀가시면서 선물을 두고 가셨음을 어떻게 증명할지 & 산타의 존재에 대해 언제 산밍아웃을 할지 고민했다면, 이제는 조금 다르게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진 않을까 의미를 찾는 애미는 생각에 잠긴다. 둘이서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를 재잘재잘 나누더니만 어느새 조용해진 집안, 아이들이 간만에 한가로운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래, 칼자루는 애미에게 있다는 것을 느그덜도 알긴 아는구나.


첫째는 만화를 그리며 여유 시간을 보낸다. 똥손 엄마는 햇님이가 긁적긁적이다 작품을 탄생시키는 순간마다 경이로웠기에 살짝 태블릿을 검색한다. 슬며시 다가와 건네는 카드 2장.


< 루루만화 by 햇님 > 그렇게 루루가 우리에게 행복이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작품이 탄생. 삼 남매로서의 첫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막내의 크리스마스 소원도 내심 궁금했나 보다. 가족의 행복을 바라는 우리 고양이의 예쁜 마음이, 햇님이의 마음 어느 구석에라도 있을 것만 같아서 엄마산타는 감동받는다. (참 쉬운 사람... 허허허)



엄마산타의 마음에 감동을 선물한 우리막내고양이의 소원 만화로 엄마는 결제를 마음먹고 카드를 주섬주섬 꺼내는데.....



너는 정말 행복을 넝쿨째 몰고 온 선물 같은 존재란다. 네가 와서 우리 가족은 매일매일이 행복해. :D
?!?!?!?!??!?!??!??



즐겨둬 얘들아.

내년부터 크리스마스는 성탄의 감사와 나눔 문화를 회복해 볼 계획이란다.





[성탄특집] 2019. 12. 24 한국기독공보
현장 전문가가 말하는 바꿔야 할 성탄 문화

"성탄의 감사와 나눔 문화 회복해야"
백광훈 목사님의 글

경기가 예전만 같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성탄절은 성탄절이다. 연말연시 떠들썩한 분위기와 맞물려서 성탄절은 기업에서도 '성탄절 특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케팅 시즌이 되었다. 이러다보니 때론 성탄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헛갈릴 때도 있다. 사람들은 성탄절하면 아기예수의 이미지보단 산타클로스와 그가 가져오는 선물들을 생각하고, 연인들은 기획사들이 마련한 로맨틱한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떠올리곤 하는 것 같다.

사실, 성탄절은 한국교회가 문화화(inculturation)시킨 대표적인 절기였다. 그래서인지 신앙인들 뿐만 아니라 비신앙인들에게도 성탄절에 관련된 아련하고 따뜻한 기억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싶다. 교회에 나가지 않거나 혹은 오랜 동안 출석하지 않은 이들이라 할지라도 성탄절에 교회에 나가는 것이 그렇게 어색한 일은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의 손엔 풍성한 선물이 들려졌고, 청년들은 성도들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축복의 새벽송을 불렀던 추억이 있다. 교회학교 아이들은 성극을 하며 한 번쯤은 이 천 년 전, 베들레헴 마굿간, 아기 예수 탄생 현장의 한 등장인물이 되어 구원의 감격의 현장을 재현하기도 했다. 성탄절은 그렇게 교회를 중심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기억되고 나누어졌던 따뜻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급속하게 팽창한 경제와 소비적 대중문화 속에서 성탄을 맞이하는 풍경도 바뀌어갔다. "성탄절은 백화점에서 먼저 온다"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교회에서 성탄절을 먼저 경험하지 않고, 백화점의 화려한 조명과 빛나는 상품들 속에서 성탄은 그렇게 소비되게 되었다. 성도들 역시, 아기 예수를,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경건과 절제, 나눔과 사랑으로 실천하는 시간으로 대림 성탄의 시기를 보내기 보다는 의례적인 교회 행사로 여기며 세상의 상업적 분위기에 휩쓸려 이 시기를 별 감흥 없이 보내는 경우도 많아지는 것 같다.

변질되어버린 오늘의 성탄문화는 교회로 하여금 성탄의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과제를 부여한다. 물질주의와 소비주의가 만연한 오늘의 문화이기에 성탄의 의미는 더욱 중요하다. 성탄절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이유는 단지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는 날이어서 만이 아니다. 성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값없이 받은 선물을 '은혜'(grace)라고 말한다. 이 '은혜'를 누리는 삶은 '나눔'의 삶으로 이어진다. 성탄절의 풍경마저도 소비중심적 모습으로 변해가는 이때, 자기중심적인 쾌락과 소유의 방식이 아니라, 우리 받은 생명의 은혜에 감사하며 나누는 삶, 바로 예수 성탄의 의미를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바로 그러할 때, 교회의 성탄과 세상의 성탄이 지닌 간극들이 조금씩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대림 & 성탄은 경건과 절제의 실천을 통해 여전히 세상에 집착하고 있는 우리들의 욕망들을 돌이켜보는 회개와 성찰의 시간이 먼저 되어야 할 것이다. 사순절 없는 부활절이 없듯이 우리는 대림절의 시간을 통해 우리 마음에 주심을 모실 성탄의 자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대림 & 성탄의 시간을 마냥 소박하고 무겁게만 보내라는 것은 아니다. 회개와 절제로 이어지는 단순하고 겸손한 삶의 방식은 나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그리고 타자와 이웃을 향한 적극적인 삶으로 전환토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성도의 가정부터 기쁨의 대림 & 성탄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가정마다 4주간 대림절 초를 밝히고, 예배하며, 서로를 위한 선물을 나누면서 "크리스마스는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말해주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성탄은 우리의 소외된 작은 이웃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 탄생의 첫 소식이 권력과 욕망이 넘실대던 화려한 왕궁이 아니라, 이방인들과 야외에서 밤을 지새우던 가난한 목동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은 우리들의 성탄이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대림 성탄절의 기간은 그 어떤 때보다 고립되어 외로워하고 아파하는 우리의 이웃들을 찾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눔으로 구원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시간으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21세기, 성탄의 의미가 점점 퇴색하여지고 모든 것이 소비화되는 이 시대, 성탄절의 모습들을 보며, 비판을 넘어 예수 성탄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 대안적 성탄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물질주의적 가치가 최고의 가치가 되고, 자기중심적 소비문화가 만연한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을 주시고, 그 자신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하나님 사랑의 신비를 이웃들과 나누어야 하겠다. 예수님의 탄생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진실로 평화와 기쁨을 주는 사건(눅 2:14)이 되도록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오늘의 성탄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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