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시간, 그저 말없이 내 곁을 지키는 한 생명체가 있다. 고단한 하루의 끝 방전된 심신이지만 꾸역꾸역 집안일을 하고 있는 내게 무심히 다가와 한껏 세운 꼬리로 툭 치며 지나가 벌러덩 눕는다. 고개를 돌려 집사를 바라보며 꾸움뻑 눈인사를 하는 내고양이,
'집사야, 뭐하냥. 충전할래?'
일상의 무게를 온전히 내려놓는 시간, 인생이 고단하여 묘생을 바라본다. 쓰담쓰담 부드러운 털을 쓸어내리면, 몽글몽글 마음이 녹아내려 말캉말캉해진다. 동동거리며 긴장하고 하루 종일 날 세웠던 내 모난 마음들도 둥글둥글 둥글어지는 치유의 시간. 세상만사 환멸을 느끼는 사건사고에 날마다 인류애를 상실하고는 묘류애로 충전- 나의 소진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방법.
인간이 망가뜨린 이 세상이 그래도 아름다운 건 고양이가 있기 때문이지.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 이용한
미혼시절 반려견인 장군이를 잃고 절망했더랬다. 이 험한 세상에 나의 분신, 두 아이를 내어 놓고야 말았다며 아이 둘의 성화에도 반려동물과의 삶은 극구거부했던 내가 고친자(고양이에 미친 자)가 되었다니. 인간이 망가뜨린 이 세상이 고양이로 인해 아름다워 보인다니. 인생은 정말 모를 일이다.
그 누가 고양이가 냉정하다고 했던가. 그저 말없이 곁을 내어주고, 곁에 있어주는 그들만의 다정함. 이를테면 하기 싫은 것을 해야만 하는 순간 다가와 묵묵히 그 시간을 함께 해주는 것, 고단한 하루의 끝 곁을 내어주어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것, 현관문이나 방문 앞에서 슬며시 집사의 귀환을 기다리는 그런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행복을 살 찌운다. 내고양이의 다정함들이 나를 살 찌운다.
다정한 내고양이처럼 나도 다정한 집사가 되어주어야지 다짐하는 밤, 집사의 행복에는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