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좋아한다. 원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는 희성 도련님의 낭만을 소유한 사람인지라, 꽃을 보면서도 사색에 잠기는 그 이야기가 구구절절하다. 작은 들꽃을 쭈그려 앉아 들여다보다가도, 스치듯 지나는 길가의 꽃들에 발걸음을 멈추어서도 생각한다. 생명의 강인함과 생의 유한함. 저마다 다른 형태와 색에서 뿜어내는 미의 아우라와 모두가 한 데 어울려 만들어 낸 아름다운 조화. 한때이지만 뜨겁게 피었다 지는 꽃의 절정. 이런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어딘가 모르게 꽃의 삶도 우리네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이런저런 몽상의 끝엔 언젠가 나에게 다가올 '지는 생'이 너무 소란스럽지 않게- 잔잔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살짝 아련하고 슬퍼지기도 한다.
꽃 선물도 좋아한다. 함께였던 찰나의 순간과 전하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 하는 꽃 선물. 집사가 되기 전까지는 꽃 도매상에서 손수 선물할 이와 닮은 꽃을 고심하여 데려와, 그 사람을 생각하며 다발이나 꽃꽂이를 하여 선물했더랬다.
육아도 글로 배운 나는 집사의 삶을 결심하면서도 고양이에 대한 여러서적들을 읽었던 터, 고양이에게 몇몇의 꽃과 식물들은 접촉만으로도 알레르기를 비롯한 중독을 일으킬 수 있음을 숙지했다. 그리하여고양이를 데려오기 전 키우던 몇 안 되는 식물들 베란다와 화장실 창문으로 이사, 혹은 아예 집에서 영구퇴거 조치를 취해두으니, 집사가 되며 양보한 식집사의 삶이랄까.
연말과 연초의 많은 행사에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 꽃을 만들어 선물하고 싶었으나, 집에서 만들 수가 없으니 아쉬운 대로 주문을 했다. 애정하는 꽃집에 원하는 꽃들과 색감을 대애충 말씀드렸는데 찰떡같이 알아들으시고는 작품을 만들어 주신 캄꽃집 사장님은 정말 최고시다. 요기조기 살피어 감탄하며 감상하는 꽃다발들은 잠깐이지만 선물하는 이의 눈과 마음도 즐겁게 했다.
아뿔싸. 선물하러 갔다가 내 품에 안겨온 꽃다발들에도 그이들의 귀한 마음이 담겨 있으니, 일단 소중히 집에 가져왔다만 내고양이가 걱정이다. 빠른 정리를 결심하고 재빠르게 움직인다. 손은 눈보다 빠르게, 행여나 꽃얼굴이 다칠 새랴 고양이를 다루듯 조심스레 화병으로 옮긴다.
호기심 많은 우리 집 아가씨는 낯선 것에 경계가 심한 편인데, 꽃 좋아하는 집사를 닮아 그런지 어쩐지 꽃에게는 그런 것 같지가 않다. 다가와 킁킁킁킁 냄새를 맡으니 거베라와 장미는 고양이에게도 안전한 꽃이라고는 하지만, 괜스레 불안하다. (백합과 튤립, 수국, 카네이션 등은 소량으로도 고양이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하니, 더더욱 조심. )얼른 정리하여 집사전용 영역으로 꽃들을 이동시켰으니 괜찮을 줄 알았다만...
꽃 좋아하는 냥이의 최후는 좌측 안구의 알레르기성 결막염으로 이어져 고난주간에 있다. 왼쪽 눈을 뜨기 힘겨워하는 내고양이를 보는 집사의 마음은 미안함과 안쓰러움으로 찢어진다. 영하의 날씨에도 창문을 열어젖혀 찬기운이 집을 온통 관통하도록 환기하기를 시작으로 구석구석 쓸고 닦는다.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환경을 만들고, 안약도 잊지 않고 넣어주고 있으며, 면역력 증강을 위한 보양식도 준비,살뜰히 내고양이를 살핀다.
불안한 마음에 안전하다던 거베라와 장미도 세탁실로 격리시켰으니 이제는 그들과 세탁실에서 은밀한 데이트를 하고 있다.
세탁실의 거베라와 장미, 화장실에 자리 잡은 호접란과 호야, 바로크벤자민. 영구퇴거당한 식물들은 다른 곳에서도 잘 자라고 있으니 다행이다.
꽃과 고양이. 내가 사랑하는 이 두 존재가 한 공간에서 평화로이 공존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이룰 수 없음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어찌 되었든 격리라는 기막힌 동거를 통해 거기 있어줌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냥 거기 둠이 버려둠이 아니라 그냥 거기 둠으로써 끌어안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식집사 이승희 작가님의 글을 떠올려본다. 굳이 스스로 열렬하다고 소리치지 않아도 깊고 따뜻하다는 식물들의 마음을, 꽃과 고양이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닮은 것도 같다.
내 원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웃음, 농담, 고양이, 그런 것들.... 고양이 고양이 내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