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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중 숨바꼭질

꼭꼭 숨을 고양~

by 세일러 문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던 습관은 자꾸만 내 고양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온 가족이 출근과 등교로 집을 나선 고요한 집 안에서 내고양이가 혼자 어떤 시간을 보낼지 마음이 쓰이는 요즘. 나른한 낮,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 자기의 온 세상을 만끽하며 즐거이 지내면 좋으련만, 혹시라도 외로운 기다림이 낮 시간의 전부일까 봐- 사랑하지만 그 시간과 마음을 알 길이 없어서, 알고 싶지만 알 수 없는 마음인지라, 내고양이의 시간을 오래 들여다본다.



낮의 내고양이는 도도하고 새침하게 창가에 머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남천을 보기도 하고 새라도 날아다니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응시하다가 이내 낮잠을 청한다. 손톱 같은 초승달과 그믐달을 담고 있는 낮의 눈은 어쩐지 낯설기도 하지만 유리구슬처럼 맑고 영롱하여 신비롭다. 작고 불그스레 코는 앙증맞고 앙다문 입이 야무지다. 너도 행복하니?



밤이 되어서야 다가오는 내고양이. 어둠이 짙게 깔린 밤 고양이들은 동공을 활짝 열어 보름달을 닮은 동그란 눈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야행성동물다운 활기를 찾아 장난도 걸어오고 장난감을 물고 와 놀자고 하는 귀여운 녀석. 퇴근한 남편에 이어 딸, 아들도 학원을 다녀와 모두 귀가하고 나면 가족 완전체의 무사귀환을 환영하듯 우다다를 시작한다. 내고양이의 귀여운 루틴이다. 저녁을 먹고 난 후 루루의 일상이 무료할 새랴, 사냥놀이와 고무줄, 공놀이 코스로 놀다 보면 시작되는 숨바꼭질.



루루 어딨지이?!


숨바꼭질 시작. 그녀의 숨숨집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쇼파 밑, 장식장 밑, 책장 밑, 수납장 옆, 화장실 뒤, 그리고 커튼 뒤. 거실을 주영역으로 삼고 있기에 스윽 둘러 사라진 내고양이를 찾는다.



귀여운 녀석, 죠기 숨어 있구나. 크크크 그 스릴 넘치는 기분을 엄마도 너무 잘 알고 있지.


덜 큰 두 어른이 결혼을 해, 퇴근 후 인터폰에서 차량 도착 알람이 울리면 우리 부부는 숨바꼭질을 시작했더랬다. 옷장 속에, 침대 밑에, 방구석에, 베란다에, 숨어 숨 죽이고 있다 보면 어딨지? 어디 숨었나? 일부러 더 쿵쾅쿵쾅 다니는 남편의 발소리에 심장이 두근두근 요동을 쳤다. 이러다간 심장 소리에 발각되겠구나 싶을 만큼 심장이 뛰어 폭발 직전에 이를 때 즈음, 까치발로 조용히 다가와 너무도 태연하게 스윽 등장하여 요깄네! 우하하 웃음으로 종결되었던 신혼의 추억. 별 것 아닌 것에도 뭐가 그리 행복했는지, 젊은 나와 남편이 귀여워 웃음이 난다. 그리고 다 잊혀진 줄 알았던, 그런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는 내고양이가 고맙고 귀여워 또 웃음이 난다.


루루 어딨지? 아이 정말 못 찾겠다. 루루 봤니? 못 봤다고? 와 정말 루루 꼭꼭 숨었구나.


알면서도 모르는 척 퉁탕 퉁탕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면서, 커튼 뒤에서 어깨가 으쓱하여 웃고 있을 내고양이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옷장 속에 숨어 남편이 못 찾고 있음에 큭큭대던 스물여덟의 나처럼 말이다. 그 시절의 남편도 어쩌면 으쓱할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일부러 못 찾는 척해줬던 것은 아닐까. 그 시절 그대의 마음과 비슷한 그 마음으로 내고양이를 사랑한다오.




열에 아홉은 못 찾겠다 꾀꼬리 포기선언을 하고 기다리다 보면, 나 찾았냥? 후훗, 여기 있었다옹 커튼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내는 내고양이.


루루야, 행복하니? 엄마는 참 행복한데, 너도 행복한 거지? 눈을 지그시 감을 뿐 여전히 대답이 없다.

그저 본인이 기분 좋을 때만 냥! 집사의 말 중 유일하게 알아듣는 까까줄까?라는 말에만 자동반사적으로 냐옹~ 대답하는 네가 밉지가 않으니, 오늘도 내고양이의 매력에서 허덕이는 중.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나는 시크한 그녀의 매력이란... 나는 또 이 사랑의 늪에서 질척이며 속삭인다. 사랑해 루루야.



고양이와 함께 보낸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에요.
- 콜레트 -



결코 낭비가 아닌 충전의 시간, 집사의 행복엔 이유가 없다. 날마다 행복에 허덕이는 집사의 삶이란...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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