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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짝사랑

딸이 아닌, 애인을 낳아주었다.

by 세일러 문


"아유, 우리 햇님이는 어제보다 더 예뻐졌네~"


남편은 또, 또, 또!!! 시작이다.

바라보는 눈 어찌나 스윗한지, 꿀이 뚝뚝 떨어진다. 저런 눈으로 나를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남편의 음성이 딸아이의 왼쪽 귀로 들어가서는, 고대로 오른쪽 귀로 나온다. 어간 모양새와 똑같은 모양새 그대로 나오는 광경을 보니,,, 꼬숩다.


아빠의 찬미에 그 어떤 미동도 없이 그저 자신의 아침밥을 묵묵히 먹고 있는 녀, 우리 시크한 K장녀 햇님.


남편은 12년째 지독한 짝사랑 중이다.





"날 닮은 거 같아."


임신 7주 차, 정기 검진에서 받아온 초음파 사진을 남편은 보고 또 봤다. 도대체 뭐가 보이긴 하는 건지, 자세히 볼 것도 없이 그냥 뙇! 작은 콩알인데 뭘 그리 열심히도 보는지. 1센티도 자라지 않은 콩알이를 보며, 우리 아가가 초미녀(혹은 초미남)인 것 같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예정되었을 일었다.




"장모님, 단비가 너무 예뻐요. 어어엉 엉엉엉엉."


햇님이와의 첫 대면에 남편은 아이 같이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했다. 이제 막 세상 구경을 시작한 아가 진정하고서 가족을 맞이하는 첫 대면 남편이 엉엉 울어버렸던 것. 고요한 수술실 앞 복도에 성인남자의 울부짖음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을 것이다. 그렇게 예뻤을까, 그렇게 좋았을까. (응급수술로 이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고 마취상태로 단잠에 빠져있었던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는다. 평생을 놀려 먹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데...)




햇님이는 태생에 시니컬하고 단단한 아기였다. 어린 아기임에도 엄마아빠가 앞에서 온갖 재롱을 떨어야 귀한 웃음을 한 번씩 보여주던 흔치 않은 아기라니.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고, 사랑도 많은 나로서는 가끔 도도한 내 딸이 어렵게 껴질 때가 있었. 그리고 길어진 연년생남매 독박육아 돌봐주랴 웃겨주랴 피곤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우리 햇님이 너무 말랐다. 얼굴이 반쪽이 되었어."


영유아 검진에서 항상 상위 3% 안쪽의 상당한 머리둘레를 자랑했던 햇님. 누가 봐도 포동포동 3등신의 매력을 발산 중인데, 일주일에 2시간만 아이를 만날 수 있었던 남편은 햇님이가 너무 마른 것 같다며 걱정을 하곤 했다. 피골이 상접해서 공주를 극진히 모시고 있는 나에게 했어야 했던 말을 통통공주에게 했던 죄. 아마 그 죄로 그는 오래도록 고통받고 있을 일이다.



아이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눈물이 많고, 웃음이 많은 열두 살 소녀가 되어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빠에게 사랑을 고백받으면서 말이다.


"햇님이 어제보다 더 예뻐졌네?"

"햇님이 아침보다 더 예뻐졌네?"

"햇님이는 아까보다 더 예뻐졌어."

"예쁜아, 오늘 하루는 어땠어?"

"귀욤!! 잘 자요~."


딸바보가 될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만, 남편이 이렇게 딸등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연애 때 남편은 애들을 싫어했으니.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싫어해서- 데이트 중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보면 싫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거나 그 자리를 피해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몇 중의 꽃과 아기를 싫어하는 남편. 나는 이것이 잘 이해가 되질 않았고, 장난스레 당신은 정신감정을 받아보아야 한다고 얘기하곤 했다... 그랬던 그가, 지새끼를 낳아보더니 이제는 아기등신이 되어 있다. 외출해서 남의 집 아기들을 보면 눈을 떼지 못하고, 햇님이 그 무렵의 시절을 추억하다 혼자 울컥울컥 해 하는,,, 여성 호르몬이 폭발하고 있는.. 남편.(나이 들수록 여성호르몬이 소진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는 나로서는 이 상황이 되게 웃기다. 그리하여 어쨌든 부부가 또 밸런스를 맞추게 되니 괜찮을 일인가.)



동생과의 전쟁 같은 사랑에서 엄마를 뺏길 새랴, 우다다다 달려와 품에 안기고 뽀뽀를 해대는 그녀. 곧 닳아 없어질 나를 남편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어쩌다 한 번 그 전쟁통에 콩고물이 떨어질까 내심 기대하며

"햇님아, 아빠도~."


슬쩍 얼굴을 들이밀면, 대대분의 날들에 대꾸도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도도한 그녀.

크크크 꼬숩다. 당신

묘한 승리감마저 드는 이 기분, 이 사랑이 일방통행이라 다행이다.




오늘도 지치지 않고 사랑을 외치던 남편은 기회를 보다가 데이트를 성사시킨다. 서씨 셋이 심야영화를 보러 간 덕에 엄마도 행복한 아름다운 밤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남편의 마음이 곧 남편의 성장 같아서, 새삼 인생은 살아볼수록 재미지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끝에, 저런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이의 삶이 궁금해진다.


남편의 짝사랑을 응원하는 밤,

당신의 짝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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