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잘 본 평행우주가 있었다면

나의 수능~대학 이야기

by 오로지

지난 번 글을 올린 지 시간이 꽤 흘렀다. 이렇게 게으르게 업로드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몸이 아파서 어쩔 수 없었다. 마땅한 이유도 없이 호되게 아팠다. 희미한 인과관계라면, 주말 동안 쉬지 않고 삼체 3편을 읽어서였을까. 독서도 피로 누적에 한 몫 하는 걸까? 아니면 내 몸이 아직 우주여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무튼 11월에 ‘귀문관살’이 껴 있다고 하더니,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경험이었다. 유난히 따뜻한 11월에 나 혼자 오한으로 떨면서 이틀 동안 체중이 2kg가 빠졌다. 지금은 얼추 회복되어서 커피 빼고는 다 잘 먹고 있다.



parallel_universe_concept.jpg 평행우주 같은 무언가 [이미지: 챗GPT]



그런 고로, 수능 얘기를 뒷북 치듯이 느지막이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당시 26살로 굉장히 젊었다)이 이런 말을 했었다.

“대학교는 그 사람의 브랜드 같은 거야. 평생 이름표를 달고 다니는 셈이지.”

1학년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듯 보이는 시기다. 나와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수능은 내 인생 최초로 벌어진 미스터리였다. 나는 가끔 엉뚱한 데서 터무니없는 성취도를 보여주곤 하는데, 그게 하필 수능 당일에 벌어졌다. 아직까지도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머리가 멈춰서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긴장을 많이 해서였을 것이다. 심지어 다른 과목도 아니고 국어에서.


평생 받아본 적 없는 등급을 하필 수능에서 찍어버린 것이다. 나는 12년 내내 국어를 잘 하는 학생이었다. 내신에서도 모의고사에서도 2등급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만 점을 받은 적도 꽤 있었고. 게다가 글쓰기는 내 일생일대의 과업이었다. 읽는 속도도 빨랐다. 보통 학생들에 비하면 기본 능력치가 높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적표에 나온 점수는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점수는 냉정하다. 내가 잘하고 못한 만큼 나오는 것이 성적이다. 나는 수능이라는 큰 무대에서 실력 발휘를 못 한 것이다. 애써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추운 겨울 동안, 실기 준비에 매진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벌써 재수를 결정했다며 마냥 해맑게 웃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재수를 할 마음이 단 0.1g도 없었다. 수능 시험장을 나오면서 ‘다시는 여기에 오지 않을 거다.’ 하고 이를 갈며 굳게 다짐한 탓이었다. 그래서 성적에 맞는 대학교를 갔고, 아쉽기는 했지만 드디어 교복을 졸업한 기쁨이 더 커서 교과서와 문제집 따위는 냅다 버려버렸다.


그렇게 진학한 대학은, 뭐랄까, 의외로 고등학교의 연장선이었다. 강의 시간은 꼬박꼬박 챙겨야 했고, 시험은 결국 죄다 암기였다. 나는 내 전공에 약간의 흥미 외에는 어떤 계획이나 목표도 없었다. 학문에 대한 동경을 품은 내 모습은 이미 사라졌다. 국어(그러고보니 그때는 언어영역이었다)의 처참한 점수로 인해 마음 속 깊은 야심을 드러내기도 민망했다. 개인적으로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싫어하지만, 단순히 말하자면, 그때 내 자존감의 한 축이 부서져 균형을 잃어버린 셈이었다. 그나마 글쓰기 교양 시간에 받은 A+가 희망의 불빛을 약하게나마 살려놓았다.


되는 대로 이어진 4년은 시니컬한 시대였다. 내 의문은 이것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결과가 이 모양인데, 대체 다 무슨 소용이지? 학교나 시험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는 좀더 큰 틀에서의 짜증이었다. 재수를 해도, 편입을 해도 어차피 학교를 다녀야 하고, 단번에 좋은 성적을 받아 더 유명한 대학에 간 애들과는 차이가 계속 있을 텐데 시도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지금 돌이켜봐도 나는 얌전한 탈을 썼달 뿐이지, 학교 생활에 잘 맞지 않았다. 그럭저럭 시간을 때우며 학위는 받을 수 있었어도, 내 진심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몇 번 진짜로 ‘때려치우려는’ 시도를 했으나 엄마가 졸업은 하라고 워낙 단호하게 했기에 별 수 없이 따르고 말았다. 나도 사실 불만만 많았지 배짱도 없었고, 몸이 편한 게 제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학을 다니는 내내 허송세월한 건 아니었다. 이력서에 쓸 만한 대외활동이나 수상경력은 없었어도, 나름의 낭만을 챙기면서 다녔던 것이다. 나 때는 ‘스펙’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된 분위기였는데, 이에 참으로 반발심을 갖고 있었다. 스펙을 만들기 위한 공부, 인간관계, 허울 좋은 공모전 참가 등등으로 점철된 삶은 결국 수능 공부하는 고등학생과 다를 바가 없지 않나. 찍어둔 목표를 향해 달리기만 하는 레일에서는 한 번 떨어지면 다시는 올라갈 수 없다. 그리고 그 레일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이런 강박적인 환경을 부정하고 싶었다…는 대단한 의지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멋대로 살다가는 결국 낙오되어 사회에서 내 자리 하나 못 구하고 말 것 같은 불안감도 항상 있었다. 내 잉여 에너지는 흘러흘러 가다가 록음악에 머무르기도 했고, 특이한 영화나 서브컬처에 꽂히기도 했다. 대학 시절 가장 좋은 기억을 꼽으라면, 벚꽃이 핀 캠퍼스를 내려다보며 덴마크 작가의 책을 읽었던 시간이다. 책을 좀더 많이 읽어둘 걸 하는 아쉬움은 있다.


한동안 수능 시험을 다시 보는 꿈을 꿨다. 악몽이었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는 머릿속에 든 것도 없고 공부할 것만 산더미인 꿈이었다. 초조함과 불안감, 완성되지 않았다는 부족한 자신감, 이런 것들이 십 년간 내 주된 정서였다. 매번 시도해도 실패했다. 다시 시도하고 실패하고, 제대로 되는 것 하나 없이 인생에서 제일 좋다는 청춘을 지나보내고…… 내 20대 초중반은 그닥 치열하지도 않았고 그저 고뇌와 좌절만 가득했다.


몇 주 전에 새로운 꿈을 꿨다. 내가 잠복 형사처럼 중학교에 학생으로 간 내용이었다. 무언가를 찾는 임무가 있었고, 나는 학생처럼 보이기 위해 교복을 입었다. 교복이 몸에 맞지 않아 널널하게 컸던 기억이 생생하다. 교복을 정리하며 나는 어른인 걸 들키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꿈이라서 어찌저찌 학생들과 지냈지만, 계속해서 이질감을 느꼈다.


재미있는 꿈이었다. 이 꿈에서 가장 마음에 든 점은, 내가 어른이라는 부분이었다. 나는 더이상 학생이 아니었다. 나는 내 판단에 의해 움직이는 자유인이었다. 이제는 수능을 보는 꿈을 꾸지 않는다. 만약에 꾼다 하더라도, 겁에 질리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어른이니까.


다시 담임 선생님의 말로 돌아가서, 학벌은 그 사람의 브랜드일까? 음,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다. 좋은 학교를 나오면 대체로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네임밸류를 위해 한정된 자산(시간과 에너지, 돈)을 쏟아부을 가치가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대학이 시간 낭비라며 박차고 나와 사업을 시작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4수, 5수를 해서라도 명문대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기준은 자신에게 달렸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중요한 것이고,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이렇게 단순하다.


나로서는 이제 꽤나 과거가 되어버렸으니 수능에 대한 상념을 뒤로 할 때가 왔다. 다만 내가 대학에 또 다닌 평행세계가 있다면, 거기서는 예술대학에 가고 싶다. 유학도 가고. 흠, 지금이라도 할 수 있나? 살짝은 가능성을 열어본다. 그게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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