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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바다

고통일까 삶의 연속일까

by B 비

언니는 대학생이 되어 운전면허를 바로 취득했고 늘 차를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하지만 부모님 그 누구도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다. 언니 역시 그걸 스스로 해결하거나 때를 참을 만큼 어른이지 못했고 그저 술과 친구를 좋아하던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그런데 그놈의 '차' 때문에 언니는 인생의 가장 큰 결정을 너무 쉽게 내려버렸다.


언니는 졸업 후 서울로 취직을 갔다가, 26살쯤 지금은 형부였던 사람을 만나 다시 지방으로 내려왔다. 부모님은 언니 나이도 어리고, 형부는 언니보다 8살이나 많은 철부지 같아 처음부터 탐탁지 않아 하셨다.


그분은 지금 생각해 보면 결혼식 준비 때부터 다정한 남편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던 거 같다. 그분은 언니와 싸우기라도 하면 핸드폰을 꺼버리고 잠수를 타기 일쑤였고, 그러면 언니는 그분 집 앞에 가서 새벽까지 기다리며 사과를 하거나 해결하려 애썼다. 결혼 준비 기간 내내 그분은 바쁘다는 이유로 드레스 피팅도 미뤘고, 결혼식 준비 대부분을 언니 혼자서 감당했다. 언니는 늘 속상하다며 눈물 바람이었고 내가 그분을 처음 만났던 그 자리에서도, 나조차 형부가 참 답답해 보였다.


부모님은 청첩장까지 다 돌려놓고도 끝까지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니다 싶으면 멈추자." 하지만 언니는 끝내 강행했다. 뭐... 그게 사랑이라는 건가 싶었다. 좋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나 싶던 그때, 언니가 슬쩍 얘기를 꺼냈다.


"오빠가 결혼하면 바로 차 사준대. 거긴 천국이고 여긴 지옥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겠구나 싶었다. 어떤 말도 언니에겐 행복 티켓을 빼앗으려는 잔소리처럼 들리겠구나. 나는 그때부터 언니의 말을 듣고, 언니의 선택을 지지하는 쪽을 택했다. 그게 언니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최선이라 믿었다.


그렇게 언니의 결혼 생활이 시작됐다. 행복 티켓인 줄 알았던 그 기대가 언니를 고통의 바다로 안내했다. 결혼 후 1년 안에 아기가 생겼고, 독박 육아가 따라왔다. 그에 이어지는 경력단절, 시댁의 간섭과 잔소리, 남편의 잦은 외박이 일상이 되어 갈 때쯤 결혼 8년 만에 언니는 이혼을 결심했다. 한 문장으로 적어 내려간 시간이지만, 그 모든 날들이 얼마나 쉽지 않았는지 나는 곁에서 지켜봐 왔다.


언니는 지금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지원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치열하게, 하루를 채워가며 말이다. 한때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던 언니의 바다는 이제 잔잔하게 파도를 일렁인다. 육체적으로는 지금이 더 힘들어 보이지만,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가는 지금의 언니가 더 단단하고 멋져 보인다.


언니는 어느 날 내게 말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나 사랑받으며 살고 싶어, 나 사랑받아보고 싶어"라고 말이다. 나는 그 마음에 깊이 공감한다. 그러면서도 언니가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해주었으면 한다. 결국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배우자에게서, 부모에게서, 자식에게서 사랑을 찾고 구하기 시작하면 마음은 금세 갈증 나고 서운해지고 서글퍼진다. 그들은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필요한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은 줬는데 나는 안 받았다 느낄 때도 있고,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냐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부어주고, 더 이상 담을 자리가 없을 때 그 넘치는 사랑을 주변에 흘려보내며 살아가는 삶이 어쩌면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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