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려도 머물던 자리
쇼펜하우어는 인간관계를 ‘고슴도치 딜레마’에 비유했다. 고슴도치들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기 위해 가까워지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서 따뜻해지는 법을 배워야 좋은 걸까? 아니면 찔릴 걸 알면서도,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가까이 가는 게 맞는 걸까?"
그때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나는 어릴 적, 부모님에게 다가가면 다칠 걸 알면서도 너무 필요했기에 그 곁을 떠나지 못했던 아이였다. 반면에 지금의 나는 혼자서 따뜻해지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 가족들과 연락을 조금씩 줄이자, 모두 당황해하는 게 느껴졌다. 늘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시간과 마음, 때로는 물질적으로도 가장 먼저 나섰던 사람이 였기에, 내가 빠진 자리에 당혹스러움이 번졌다.
"무슨 일 있어? 힘든 거 아니지?"
그들의 걱정을 들으며,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요즘 좀 정신이 없네. 그래서 자주 연락 못할 수도 있어."
그 말을 하고 난 뒤, 부모님과 언니는 꽤 걱정하는 눈치였다. 아마도 내가 우울한 건 아닐까 싶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서로를 찌르더라도 함께 뭉쳐 있는 것이 더 익숙하고 편한 가족인 것 같다.
적당한 거리를 두는 건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마음은 조금 편한 것 같기도 하다. 현재로서의 가족은 나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를 깎아내리고, 비교하고, 말로 상처 주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상처 대신 온기만을 주고받을 수는 없는 걸까. 서로를 이해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늘 같은 방식으로 반복하는 이 관계가 씁쓸하게 다가왔다.
곧 남동생의 생일이 다가온다. 그는 늘 그렇듯 갖고 싶지만 사지 못했던 물건의 링크를 나에게 보내올 것이다. 반면, 내 생일에는 선물을 받은 기억이 없고, 식사조차도 반반 부담하자며 당연하다는 듯 말하곤 했다.
그는 우리가 뭔가 함께 해보자고 이야기할 때마다 늘 “돈이 없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대화 중에는 비싼 한우집에 자주 가 이제는 일하시는 이모들과도 얼굴을 익혔다는 둥, 다금바리를 먹었다는 둥, 골프를 치러 필드에 나갔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냈다. 나는 그의 수입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삶에서 가장 우선되는 건 언제나 ‘자기 자신’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말이 세게 나간 적이 있었다.
"너, 좀 철이 없는 거 아니야? 결혼할 때 부모님에게 손 벌릴 생각은 하지 마, 노후 준비는 할 생각이 있긴 해?"
그러자 그는,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그렇게 아끼면서 살고 싶진 않아.”라고 말하며, 오히려 나를 세상물정 모르는 인색하게 살아가는 바보처럼 보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부모님은 그런 동생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남자니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그의 허술한 지출을 당연히 도와주었다. 반면, 나에게선 바라기만 하는 현실이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나는 언제나 '되도록 혼자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었고, 가족의 빈틈을 메우는 사람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 역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걸 좋아하고,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사는 삶이 아니라면, 도자기 공예처럼 마음이 끌리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이란 걸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동안은 늘 누군가의 요구에 맞춰 반응하고, 그 기대에 응답하느라 정작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찾을 시간조차 주지 못하며 살았던 것 같다. 마치 잠시 멈추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가며 스스로 내 존재에 가치를 매겼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