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순이는 있고 영란에겐 없는 것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박영란 (부상길 학씨 부인)은 늘 오애순을 부러워한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보편적인 우리들의 모습 같았다. 나 역시 양관식 같은 남편이자 아버지는 현실에 없는 판타지라고 생각하며 봤으니 말이다. 영란은 애순을 바라보며, “점점 더 부티나 보인다”며 금명이 아빠가 사준 핀 때문인가 보다고, 자신의 딸에게도 “꼭 이 아줌마 남편 같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라”라고 당부한다.
부상길과 먼저 선을 본 사람은 애순이었다. 애순은 당장 갈 곳도 기댈 곳도 없고, 시댁 역시 고아나 다름없는 자신을 따뜻하게 받아주는 것 같지 않고,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학교에서도 쫓겨난 답답한 상황 속에서, 애순은 선을 본 부상길을 결국 거절한다. 현실이라면 대부분이 부상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꽤 부유한 집안에, 결혼만 하면 끼니걱정, 쉴 곳 걱정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애순의 삶도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영란의 삶이 더 행복해 보이지도 않았다. 배가 부른 산모의 입술이 터져 있는 걸 봤을 때, 그리고 부상길의 잦은 바람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이어질 때마다, 영란의 일상이 평온하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애순이 영란이 춤을 추다 도망치며 신발을 놓고 갔을 때, 신발가게에서 이런 말을 건넨다.
“수틀리면 때려치워요. 뭐 대단한 상전 모시고 산다고 찌글찌글 속 끓이고 사셔.” 라며 영란을 달랜다.
내 생각에 이 장면이 애순이와 영란의 다른 점이었던 것 같다. 애순에게는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에너지와, 자신을 믿는 힘, 그리고 자기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첫째 딸 양금명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금명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오랫동안 사귀었던, ‘차관집’이라 불리는 부유한 집안의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결국 파혼하기로 결정한다. 그 결정을 하며 금명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너무 좋은데, 나도 너무 좋아,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더는 못하겠어." 라며 거절 의사를 밝힌다.
그리고 금명은 본인의 꿈을 향해 나아가며, 자기 삶을 스스로 일구어 나간다. 세상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고, 그중 어떤 길이 정답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나를 가장 아끼는 방향으로, 나의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엔 조금더 후회가 작은 삶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