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줄 사람은 나뿐이기에

상처로 돌아온 인정, 그리고 나의 선택

by B 비

부모님과 가족들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고, 나를 먼저 챙기며 보듬기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착한 아이’라는 굴레 속에서 인정과 사랑을 받으려 애썼다. 나 자신을 돌보기보다 부모님과 가족을 먼저 살피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었다.


무언가를 사러 가면 가장 좋은 것, 가장 비싼 것을 골라 가족들을 위해 선물했다. 부모님께는 내 생일은 20살이후 챙겨주신 적은 없었지만, 나는 늘 화장품과 지갑등 선물을 사 들고 갔다.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사고 싶은 것도 누르며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세 차례 부모님과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나는 부모님을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작년, 부모님께서 나의 노력을 ‘고마움’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당연함’으로 여기고, 하지 않으면 서운하다고 하시는 모습을 보고 허탈함이 몰려왔다.


남동생은 언제나 자신을 우선시했다. 부모님이 힘들든 어렵든, 그는 빚을 내서라도 먹고 싶은 걸 먹고, 좋은 곳에 가며 살았다. 그런데 내가 고시원에서 살 만큼 힘들던 시절, 부모님이 동생에게 차를 사주고, 심지어 집까지 사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그는 겨우 20대 후반이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남자’라는 이유 하나로 동생은 모든 지원을 받고, 나는 효도를 해야만 인정받는 위치라는 것을. 억울함이 몰려왔다. 동생이 사고를 치고 고등학교를 자퇴했을 때, 나는 직장을 잠시 그만두고 그의 공부를 챙겼다. 도시락을 싸고, 모은 돈으로 학원비까지 대신 내주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것마저도 “우리가 너를 낳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본인들 덕으로 돌렸다.


가족을 위해 아무리 헌신해도, 그건 늘 당연한 일이었고 나의 몫의 인정은 없었다. 같은 집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자란 언니와 동생에게는 효도를 바라지 않으면서, 나에게만 그것을 당연히 요구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너무나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엄마는 늘 “우리 집은 돈이 없다”고 말하셨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졌다. 언니는 재료비가 많이 드는 사립대 미대 보석디자인과를 다녔고, 동생 역시 원하는 것을 누리며 자랐다. 그런데 나는 늘 ‘집이 힘드니 네가 좀 참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원하던 것을 가져본 기억이 없었다. 원하는 고등학교를 가는 시험을 잘 보면 사주겠다던 휴대폰도 결국 못 받았고, 대학 역시 전문대를 택해 빨리 취업했다. 하지만 그 집안의 어려움은 내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고, 언니와 동생에게는 언제나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헌신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말은 “너는 잘 참고 견디니까, 더 참아라”였다. 동생은 작은 집이나 고시원 생활을 절대 못 하지만, 나는 견뎌낼 수 있으니 굳이 지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마주했다. 그제야 알았다. 부모님께 인정받으려는 기대는 곧 상처로 돌아올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연습하고 있다. 무조건 나를 우선으로 두는 연습. 먹고 싶은 것을 제때 챙겨 먹고, 머리도 미용실에서 다듬으며, 늦게나마 나를 위한 투자도 시작했다. 그다음에야 부모님을 생각하는 순서를 두려 한다.


앞으로의 나는, 나 자신을 먼저 챙기고 그다음에 남을 돌볼 것이다. 그래야 훗날의 내가 과거의 나를 한심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나를 지켜줄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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