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싫증 나는 도시도 새벽이 되면 조용해진다. 서서히, 마치 세상이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다.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마음 한편에 쌓였던 피로도 어느새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 밤이 좋다. 사람들의 분주함과 시끄러움이 멀어지고, 잠시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그 순간에 나는 안식을 느낀다.
평소라면 혼자서 공원을 걷곤 했다. 그곳은 늘 먼지만 날리고, 나무들은 바람에 휘날리며 늘 똑같은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어떤 날과도 다르게 느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오늘의 공기는 특별했다. 발걸음마다 다가오는 새벽의 차가운 공기와 고요함 속에서, 내가 느끼는 변화는 단지 풍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옆을 보니, 그 이유는 옆에 네가 있는 것 같다.
혼자 새벽 거리를 걸을 때, 나는 고독을 온전히 느낀다. 아무리 고요한 순간이라 해도, 홀로 있는 고독은 때때로 마음을 눌렀다. 그러나 오늘, 이 순간만큼은 그 고요함이 나를 압도하지 않는다. 너와 함께 걷는 이 거리는 마치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주었다. 너와 함께 걷는 길 위에서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고 있었다.
집에만 있기엔 아까운 날씨와 선선한 공기 속에서, 우리는 서서히 걸어간다. 어느덧 거리엔 우리가 만들어낸 잔잔한 이야기가 흘러넘친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너와 나누는 아무 생각 없는 이야기들은 이상하게도 마음 깊은 곳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그 작은 순간들이 내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너의 목소리, 너의 웃음, 너의 그 작은 행동들이 어쩌면 나에게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너는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던졌던 말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말한 것들이 얼마나 특별하게 다가갔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저 흐르는 대로 내뱉은 말들이, 너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이 된 것이다.
편의점에서 사 온 따뜻한 레쓰비 한 캔과 너의 흥얼거리는 이름 모를 노래는 그 어떤 보석보다 빛나는 순간이었다. 새벽 내내 걷고, 이야기하고, 함께라서 행복한 그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충분했다. 하루가 끝나는 시간에 마주하는 해돋이, 우리의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그 모든 이야기는 너의 기억 속에 고요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나만의 추억이 아닌, 우리만의 추억으로.
그 새벽의 거리가 내게 주었던 것은 단순히 고독과 고요함이 아니었다. 그 시간은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함께 했던 순간들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만든 시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모든 순간이 너무 소중했기에, 해가 떠오를 즈음에도 여전히 그 고요한 시간들이 내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