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식물 토마토, 흔하디 흔한 채소.

by 민영


오랜 식집사 생활 중에 구입하지 않는 씨앗이 있다. 바로 토마토다.


토마토가 요리의 재료로 두루 사용되는 나라에 사는 덕분에, 토마토는 나의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채소이지만, 먹고 나면 속이 불편했다.


그러니 아무리 오래 보아도 좋아지지가 않는 녀석이었다.


흔한, 너무나 흔한.


내가 사는 이곳에서 토마토는, 스테이크와 함께 그릴에 구워서 먹기도 하고 각종 소스와 음식에 빠지지 않는 필수에 가까운 채소다.


얼마나 흔하면 길거리 쓰리더미 속 버려진 토마토소스에서 발아한 듯한 토마토들이 자라나고, 거래처 공장 화단에도 누군가가 버린 토마토 싹들이 잔디처럼 널려있다.


간혹 너무 짠한 위치에서 자라나는 토마토 새싹들을 발견하면 집에 가져와서 화분에 심어두기도 하는데, 물도 챙겨주고 곁순도 제거해 주면서 키우지만 역시나 나는 먹지 않았다.



새싹이 올라온 토마토 중에서 세력이 좋은 녀석들은 지지대를 설치해 키운다.



혼자서도 잘해요.


키우는 식물마다 실패했던 사람에게는 다육 식물보다 토마토와 대파를 추천해 주고는 한다.


이 녀석이 필요한 것은 큰 화분과 지지대, 그리고 물과 햇빛뿐.


화원에서 모종을 구입해서 키워도 좋고, 나처럼 마트에서 사 온 토마토를 심어도 무관하다.


몇 달 전 손님상을 차리기 위해 구입했던 토마토 중에 10여 년 만에 맛난 녀석을 만났었다.


토마토를 먹고 맛있다고 느낀 것이 한국의 '대저 토마토'외에는 없었는데, 의외의 맛에 놀라서 큼직한 한 알을 들고 빈 화분에 묻어 두었었다.


열흘 가량이 지나자 징그러울 만큼 많은 새싹들이 화분 위로 얼굴을 드밀었다.


그 많은 새싹들 중에서 어떤 녀석을 골라내어 심어야 할까? 대답은 간단하다.


바글바글 올라오는 토마토 싹들을 지켜보다 수많은 경쟁을 뚫고 실하게 자라나는 녀석들을 기다리면 된다.


중간에 솎아주는 과정을 거쳐도 되지만, 그 과정에서 뿌리들이 다치기도 하고, 괜히 실하게 자랄 녀석을 건드리기 싫어서 방임의 시간을 거치는 편이다.


몇 주가 더 지나면 처음의 절반 가량의 새싹들이 도태되고, 그 중 일부는 한 뼘 이상의 길이로 자라난다.


며칠을 더 지켜보다 두 뼘가량으로 키가 자라나는 녀석들을 솎아내 용량 큰 화분에 옮겨 심어 주면 끝.


이때 줄기를 가로 방향으로 눕혀서 한 뼘 정도의 길이만 남기고 흙에 묻는다.


다른 식물들과는 다르게 토마토 줄기는 흙에 닿는 부분에서 사방으로 뿌리를 발달시키는데, 이렇게 하면 뿌리 부분만 연탄갈이처럼 심어주었을 때 보다 영양을 흡수할 부분이 많아져 토마토 성장에 도움을 준다.



화분에 심어준 토마토의 키가 자라기 시작하면 단단한 지지대를 토마토 줄기에 고정해 주어 부러짐을 막아야 한다.


생장 환경이 알맞다면 2m 넘게 자라나는 토마토이기에, 첫 지지대부터 길이감이 있는 것으로 챙겨주는 것이 뒷날의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


의외로 토마토는 키우는 내내 곁순 제거 정도의 수고만 필요한 순한 맛 식물이다.


열매 수정의 과정도, 오이나 호박처럼 인간이나 곤충의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노란 토마토 꽃이 활짝 피어나면 토마토가 기다리는 것은 단 하나, 바람이다.

(아파트 등의 실내에서 키운다면 토마토 줄기를 손으로 흔들어 주어야 한다.)


꽃이 흔들흔들 이리저리 움직이며 혼자서 수정을 마쳐낸다.

얼마 전에 꽃이 핀 것 같았는데, 금세 자그마한 콩알 같은 열매가 맺혀 있다.


지지대를 버팀목 삼아 자라나는 토마토들.


반가운 변화


연둣빛이 만연하던 토마토가 얼굴색을 바꾸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금세 수확해서 먹을 것 만 같은데 2~3주 이상은 걸려야 붉은빛이 초록을 물리친다.


그러니 같은 시기에 수확할 수 있는 열매의 양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토마토를 키운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토마토가 익는 타이밍을 제때 맞춰 한 날에 10알 이상 수확해 본 적이 없다.


많은 양을 수확해도 딱히 쓸데가 없으니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려나.


매일 한 두 알 정도만 수확해서 가장 신선할 때 남편이나 지인을 주고, 가끔은 흙놀이를 하다 기운이 빠진 식집사가 잡아먹고는 한다.

초록빛 토마토 열매들이 붉게 변하는데는 시간차가 심하다.


붉게 변한 토마토는 초록색 가득한 '화분텃밭'에 생동감을 더해주는 물감 같은 역할을 해준다.


줄기채소 가득한 마당에서 토마토의 붉은 기운은 언제나 시선을 강탈하는 존재다.


토마토 열매를 톡! 소리와 함께 수확할 때면 내가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싶어진다.

토마토를 좋아했다면 수확의 재미를 독촉하느라 얼마나 노심초사했을지..


토마토와 나의 정신 건강에 서로의 기호와 생장이 잘 맞아떨어지는 조화라는 생각이 든다.

붉게 익은 토마토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건강한 먹거리'라는 거창한 목표는 없었지만, 직장인이라는 굴레에 묶여 농약이나 비료를 제대로 갖추고 식물을 키우지 못했다.


못 하다 보니 안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화분텃밭'의 모든 채소들은 무농약이다.


물에 석회 성분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물만 먹고 자라난 식물들에도 하얀 석회자국이 성성하기 마련.


연수기 물과 식초 소독을 하고 섭취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화분에서 막 수확한 붉은 토마토는 수돗물 세척만으로도 얼굴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아도 토마토를 수확하는 재미는 다른 채소들의 수확의 기쁨과 다르지 않다.)


깨끗하게 세척한 토마토는 주로 생으로 섭취하는데 토마토 크기가 크지 않은 탓에 맛과 향이 더 응축된 느낌이 든다.


식물을 키워낸 사람만 느끼는 소소한 재미이고 착각일테지 싶다.


거꾸로 해도 토마토.


토마토를 통째로 심어서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나더니 꽃과 열매가 열렸다.


먹지 않고 그대로 둔 토마토는 떨어져 다시 싹이 나고 열매를 열려낸다.

시작과 끝이 결국은 토마토인 생의 주기.


건강에 좋다지만 주인이 싫어해서 생명이 유지되는 아이러니한 관계.


간혹 만나는 맛있는 토마토를 화분에 심어서 맛있는 녀석들만 가득한 '화분텃밭'이 되면, 이 독특한 관계가 언젠가는 일방적인 사이로 변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https://youtube.com/shorts/I85e3Z8p-3Q?si=E0PfGuNhQTFJ2v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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