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막걸리가 좋다. 그리고 막걸리는 좀 마신다. 그래서 막걸리는 간혹 마시고 싶기도 하다. 막걸리를 좋아하게 된 것은 친정엄마 때문이다. 친정 엄마는 막걸리를 곧잘 집에서 빚으셨다. 아버지께서 한 때 양조장에서 일을 하셨다. 그때부터 재미 삼아 막걸리를 빚기 시작하셨다. 막걸리 맛은 주인장이 결정한 때에 따라 예민해진다. 그래서 주인장은 적정한 때를 잘 알아채야 한다. 엄마는 때를 알아채야할 때 꼭 나를 부르셨다. 나는 뭔가 변화가 있어야 될 때를 잘 알아채야 했지만 늘 그렇지 못했다. 어렸을 때 내가 담당했던 것은 간을 보는 것이었다. 간은 곧 음식의 때를 알아채는 것이다. 엄마는 더 넣어야 되고 , 줄어야 될 때 꼭 나를 옆에 두셨다. 막걸리에는 고두밥이 중요하다. 고두밥도 물을 너무 많이 넣으면 술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쌀을 불려 적정한 물을 넣고 고두밥을 할 때도 엄마는 나를 부르셨다.
“얘! 물이 이 정도면 됐을까?”
“응. 엄마! 된 것도 같은데? 아니 아니다. 엄마! 물을 조금 덜어야 될 것 같은데.”
“그치? 엄마도 조금 많은 것 같더라니!”
하지만 내 대답은 나도 모르는 말이었다. 그냥 생각 없이 한 대답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엄마가 몇 번이고 물어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때 내가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쯤 되었을 것 같다. 이렇게 고두밥이 다 되면 식힌다. 이때도 나는 고두밥 간을 봐야 했다. 고두밥이 어는 정도 고들고들한지 잘 씹어서 엄마께 말씀드려야 했다. 이때도 나는 나도 잘 모를 대답을 했다. 엄마는 혼자서 술 만드는 방법을 다 알고 계셨을 텐데도 어린 나를 모든 과정에 끌어들이셨다. 다음은 누룩과 물을 잘 섞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항아리를 잘 씻어 햇빛에 바싹 말린다. 그 항아리에 잘 섞어진 고두밥과 누룩, 물을 정성껏 담는다. 그리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온도를 위해 안 쓰는 낡은 이불로 며칠을 덮어 놓고, 뽀글뽀글하게 거품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일주일 정도 지나 아래 가라앉은 찌꺼기들을 채에 걸러내면 된다. 엄마는 이틀 정도 지나면서 간을 보셨다. 술이 너무 독하다 싶으면 물을 더 넣으셨다. 그리고 또 나에게 간을 물어보셨다. 초등학생인 내가 무슨 술맛을 알겠는가! 그래도 엄마는 연실 물으셨다.
“어떠니? 술이 좀 달지 않니?”
“아니. 그냥 쓴데.”
“그래? 한 번 더 마셔봐라. 나는 어째 좀 달다.”
두 번째 간을 보게 되면 살짝 입술만 축여도 어린 내 입속에서는 독한 술맛에 눈까지 어지러워졌다. 그런데도 엄마는 연실 간을 보라 하셨고, 나는 나도 모를 답을 연실 성의 있게 했다. 엄마는 왜 그렇게 내 대답을 궁금해 하셨는지 모르겠다. 간은 엄마가 더 잘 보시는 데도 말이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는 고두밥과 함께 솔잎을 넣으시는가 하면 어느 해는 구기자도 넣으셨고, 칡도 넣으셨다. 해가 지날수록 넣는 가짓수는 더 많아졌다. 그래서 간을 보는 내 입맛은 더욱더 모르는 맛이 되었다. 그래도 엄마는 연실 물으셨다.
“얘! 간이 어떠니? 솔잎이 너무 강하지? 칡 맛은 좀 나니?”
아니! 내가 언제 칡을 먹어봤을까? 솔잎은 또, 언제 먹어 봤을까? 나는 겨우 중학생인데도 말이다. 그래도 나는 연실 간을 봤다. 그리고 역시 모르는 대답을 했다.
“엄마! 솔잎 더 넣어야 될 것 같은데 너무 향이 연해!”
“그치? 엄마도 그런 것 같더라!”
이렇게 술을 담그셨던 엄마는 내가 시집가는 날에도 담그셨다. 시집가는 날 오시는 집안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다. 그 때는 내가 옆에 없었다. 아마도 엄마 혼자서 간을 보셨는가보다. 첫 번째 술을 걸러 몇 병을 잘 두셨다고 한다. 그리고 잊으신 것이다. 그리고 십년이 지난 아버지 기일 즈음이었다. 친정엄마는 또 술을 담그셨고, 집안에 있는 항아리를 찾아 청소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오래된 구식 변소에서 입이 깨진 항아리 하나와 금이 간 항아리를 들고 나오신 것이다. 푸세식 시골 변소는 마당 끝에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아버지께서 그 화장실에서 쓰러지신 이후 거의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 화장실에 있던 항아리는 변소 쓰레기통으로 썼었다. 엄마는 모처럼 쓰지도 않는 항아리를 내다버리시려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항아리에서 까만 봉지를 둘둘 싸맨 병이 세 개가 나온 것이다. 그것들은 새까만 먼지와 똥냄새가 잔뜩 배어 있었다. 그래도 비닐봉지를 벗기고 보니 십 년 전 막걸리를 담아둔 그대로였다. 엄마는 건망증이 심하셨다. 엄마의 건망증이 결혼식 때 담근 술병을 광 항아리에 넣지 않고, 변소 항아리에 넣게 한 것이다. 십 년이 된 막걸리는 그렇게 우리들 앞에 드러났다. 십 년 전 시간을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우리 식구들은 이날 이때까지 냉대했던 엄마의 건망증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제사상 위에 모셔진 아버지도 죽어서도 별일 다 본다고 웃으셨을 것이다. 세 병중 한 병은 아버지 제사상에 올렸고, 한 병은 새 식구가 된 사위들과 며느리 신고식으로 마셨다. 그리고 한 병은 엄마께 몰래 달라고 했다. 꼭 드리고 싶은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 술은 친정에서 가져와 다시 우리 집에서 2년을 묵었다. 내일이면, 내일이면 갖다드려야지 하면서 뒤로 미뤘던 것이다. 그리고 삼 년 째 되던 아버지 기일에 그 선생님도 영원히 뵙지 못할 길로 가셨다. 나는 선생님 가는 길도 내일, 내일 미루다 가보지 못했다. 내일. 내일. 내일! 나는 때를 모두 놓쳤다. 그 때는 간을 봐야할 때였고, 또 움직여야할 때였다.
그 술은 내일이면 십오 년이 된다. 내일은 아버지 기일이고, 또 선생님 기일이기도 하다. 때는 예외 없이 누구도 기다려 주는 법이 없었다. 시간이 소년을 기다려 주지 않는 것처럼 선생님 역시 나를 기다려 주지 않으셨다. 내가 놓쳐 버린 것은 모두 내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일은 다름 아닌 나의 게으름이었다.
지금! 십오 년 묵은 막걸리를 한 잔 따라 놓고 있다. 그리고 선생님께 머리 숙여 사죄하고 있다.
제가 한 잔 올립니다. 선생님, 한 잔 받으세요! 제가 얼마나 뵙기를 고대했는지 모르시죠? 얼마나 이 술을 드리고 싶었는지 모르시죠? 이 술이 어떤 술인지 아세요? 제 게으름이, 제 그리움이, 제 못난 문장을 보여드리자 했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오만이, 때를 놓친 아쉬움에 땅바닥을 치며 울어댄 통곡 소리가 녹아 있는 십오 년 묵은 막걸리입니다. 쭈욱! 드셔보세요. 드시고 간 좀 봐 주세요. 간이 어떠신지요? 오래 묵힌 시커먼 게으른 맛이 어떠신지요? 씁쓸하죠? 차마 목에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쓰죠? 하지만 저는 단내가 펄펄 나는 술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날 밤. 혼자서 십오 년 묵은 막걸리를 남김없이 마셨다.
먼저 따라 놓은 한 사발을 들이켰다. 혀가 닿는 순간 말할 수 없이 썼지만 목구멍 끝을 넘어가면서 달았다. 그리고 뱃속은 뜨거웠다. 사발을 내려놓는 순간 얼굴 전체가 뜨거워졌다. 사발을 움켜진 내 손도 뜨거워졌다. 멀리 계신 아부지 얼굴이, 선생님 얼굴이 뜨겁게 떠올랐다. 또 한 사발 따랐다. 들이켰다. 목구멍에서 꾸역꾸역 소리가 나도록 들이켰다. 그 소리에 게으름이 넘어가도록 들이켰다. 이번에는 구수했다. 십 오년 묵은 솔잎 향은 향긋했고, 누룩은 달았고, 고슬고슬한 고두밥은 눈물이 날 정도로 구수했다. 또 한 사발 따랐다. 막걸리는 쫄쫄거리며 사발에 담겨졌다. 사발 반을 겨우 넘기고 더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병을 거꾸로 놓고 탁탁 털었다. 마지막 몇 방울까지 사발에 털어 넣었다. 마지막 사발이었다. 십오 년 시간도 이 잔으로 마지막인 것이다. 마지막 잔에 담긴 십오 년을 한참 보았다. 빛깔은 누런색이 발해져 갈색이었다. 시큼하면서 쓴맛이 강한 향이 날아가지도 않고 그대로 잔 위에서 똥냄새처럼 풍겨댔다. 새끼손가락을 담궈 휘이익 저었다.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 선생님도 이렇게 가시렵니까?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저는 누구에게 간을 물어야 됩니까? 말씀 좀 해 주세요!' 마지막 사발을 들이켰다. 막걸리는 독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독했다. 더 독한 것은 내 게으름이었다. 내 게으름은 하품을 타고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하더니 선생님께 사죄를 비는 사발 바닥까지 똥냄새를 풍기며 숨어들어 왔다. 그 독한 것이 다시 이불속까지 기어들어 왔다. 나는 눕혀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다.
세상은 어둠 속에서 점점 돌고 있었고, 나도 돌고 있었다.
여전히 멀쩡한 것은 게으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