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의 성질
반야의 성질
대승에서 말하는 반야가 가진 성질은 공(空)이라 할 수 있다. 공(空)은 반야를 충분히 깨달은 뒤에 깨달아야 그 맛이 제대로 우러나게 된다. 공은 온갖 반야가 다 농축되어 있다. 비어 있는 공은 주체가 비어있는 것이지 모든 것이 비어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양한 반야경전도 스스로 공을 알게 하기 위한 과정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모든 것을 공(空)으로 해석하는 한 깨달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만 경전을 다 읽고 감동하기를 권한다. 공(空)은 말조차 필요 없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경전도 반야를 염하는 훈련을 꾸준히 해야 소설책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소설이 마치 내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 더욱더 재미있고 감동이 있는 것과 같이 경전도 내 이야기처럼 느껴져야 재미있게 읽게 되고, 남에게도 재미있게 전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완성-반야
수많은 반야를 만나서 공을 체득하여 착하고, 즐겁고 남을 이끄는 존재가 되었을 때 ‘깨달음’을 얻었다 하며 반야바라밀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반야심경은 반야가 가진 많은 의미를 간략히 중요한 것만 260자로 추려 놓은 것입니다. 반야심경은 자기 서원을 세우는 서원문(誓願文) 같은 것이다. 불교수행은 깨닫고 할 수 있다. 수행을 하며 갈 때는 집착하지 않고 가야 헌다. 그러나 우리에게 살면서 집착 아닌 것이 있을까? 대승의 수행법은 오히려 떨어뜨리고 싶은 집착에 더 달라붙게 해서 저절로 떨어뜨리는 방법을 쓴다. 마치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하게 해서 빨리 싫증을 내게 하는 방법과 같다. 그래서 더 열심히, 그리고 힘있게 부딪히며 살자는 것이 적극적인 대승의 입장이다.
이렇게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많은 대상을 포함하는 단어가 일체법이다. 일체법은 나라는 존재를 포함해서 내가 간섭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하며, 불교는 우리에게 가는 길을 알려주는 메시지이다. 반야는 일체법속에서 나아가며 그 전체를 아는 지혜를 원한다. 깨달음을 향해 가는 자를 보살이라 하고 일체법의 행상은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을 일컫는다. 대지도론에서는 보살들이 처음 발심한 뒤로부터 수많은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되 모든 일에서 일어나는 실상을 아는 지혜를 반야바라밀이라 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일생에 한번 메카를 향해 가고 싶어 한다. 그 중 매일 메카를 가는 꿈을 꾸며 사는데 거길 갔다 오면 꿈이 없어진다며 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 또, 하나는 지혜와 연결된 말인데 성지 순례라는 메카를 향해 가는 모든 과정에서 깨닫는다고 한다. 불교도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 사실 가 봐야 별거 아닐 수 있는데도, 우리는 가야 된다. 왜냐하면 가면서 겪게 되는 모든 일에서 지혜를 얻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삶의 중간에 일어나는 실상 중 하나를 만나고 있다 할 수 있다. 불교는 지금 만나고 있는 것과 나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불교를 현실적이라 할 수 있는 이유다.
-채선후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