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는 것은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또한 잘 모를수록 두려움도 커진다. 내가 잘 모르는 것 중 하나는 술이었다. 특히 소주는 잘 못했다. 그래서 나는 소주가 두려웠다. 처음 소주를 마신 것은 작은 회사의 번역 일을 잠깐 맡아 하면서였다. 직장을 전혀 모르던 신입이었으니 두려움 역시 컸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어두운 두려움이 아니라 밝은 두려움이였다. 잘 몰랐어도 뭔가 잘 드러날 것 같은 그런 설레임을 가져다주는 밝은 두려움 말이다. 하지만 회식만큼은 어두운 두려움이 밀려왔다. 술 때문이었다.
첫 회식자리는 고깃집이었다. 달달한 갈비 냄새가 흐르는 고깃집이 아니라 돼지 껍데기 집이었다. ‘돼지 껍데기! 껍데기인데 먹을 게 있을까?’ 식당 문 사이로 새어나오는 돼지비계 익는 냄새가 의심스러웠다.
‘아니, 삼겹살 구이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돼지 껍데기를 어떻게 해야 되나?’
앉아서 분위기가 시키는 대로 보고 있었고. 듣고 있었고, 인사했고, 대답했다. 직장 상사 분들 중 문 차장님은 나를 관찰하듯 쳐다보았다. 나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마흔을 넘은 나이라고 하셨는데 흰머리가 눈에 띄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다. 기분 상하지 않게 앉아만 있는 것이다. 나는 싫은 내색을 단호하게 하지 않았다. ‘단호’라는 말을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반은 강압에 의한, 반은 본인 의사에 따르겠다는 하지만 만약 본인의 뜻이 분위기에 맞지 않으면 단호히 무시하겠다는 그런 묘한 분위기로 가고 있었다. 문 차장님을 포함한 다른 세 분들은 돌아가면서 두 세 가지 씩 질문을 하셨다. 술자리는 떠들썩했다.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것이 꼭 면접시험을 다시 한 번 검증하는 것 같았다. 혹시 면접관들이 잊은 질문을 검증하듯 질문이 이어졌고, 내 대답은 짧았다. 그렇게 말이 오가면서 내 눈치는 숟가락을 따라 입으로 오갔다. 그러는 사이 문 차장님은 술잔을 받으라 했다.
“술 할 줄 아나? 최 종 숙씨?”
“저는 술을 자 아 알 못 하... .”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잔을 잡고 있었고 술은 부어지고 있었다.
‘술! 술을 마시라고? 그것도 소주를, 소주는 쓰다던데... .’
나는 이런 윗분한테 술잔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또한 연령대가 다양한 식사 자리에 참석할 기회도 없었고, 낯선 사람들과 술을 마실 기회도 많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술을 받으라니! 드라마나 소설책에서 쓴 소주를 들이키는 주인공의 모습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더 마시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쓴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마시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소주를 마신다는 것은 마치 연속극 속의 장희빈이 사약을 마실 때 그 표정이 떠올라 끔찍해진다. 하지만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기 싫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놓인 투명한 유리잔에 점점 두려움이 채워지고 있었다. 스물일곱의 새로운 두려움은 그렇게 떨고 있었다. 나는 무섭다고 떨고 있는 그 순간에도 누구는 떨고 있는 것도 서열화를 하곤 한다. 그리고 한마디씩 한다. 별것도 아닌 걸로 엄살을 피운다고, 너는 아직 새 발의 피도 아닌 걸로, 벼룩의 간도 아닌 걸로 두려워한다고, 번데기 주름 옆에도 가지 못할 주름을 잡고 있다고, 더 살아보라고 뭘 몰라도 한참은 모르고 있다고... . 그래도 좀 더 많이, 길게 두려움에 떨었다 한들 두려움은 두려운 것이다. 아이가 개미가 무서워 떨고 있는 것과 어른인 내가 바퀴벌레가 무서워 떨고 있는 두려움은 다르지 않다. 단지 두려워하고 있는 대상이 다른 것뿐이다. 아이는 개미를 모르는 만큼 두려워할 것이고, 나도 바퀴벌레를 모르는 만큼 무서워하는 것이다.
문차장님의 잔을 받고 떨고 있는 순간 언젠가 김 선배한테 술잔을 받을 때가 생각났다. 선배는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았고, 직장에, 대학원에 젊은 피를 촌음을 아껴가며 뿌려대고 있었다. 그 때 김 선배는 정말 하늘처럼 보였었다. 하늘같은 선배님께서 바퀴벌레를 보고 깝죽대는 나에게 술을 권하셨다.
“야! 임마, 술 좀 받아 봐라!”
“싫어요! 저, 술 못한다니까요!” 나는 입을 삐죽대며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안 돼! 멀어도 한참 멀었어!”
지금 와 생각하니 그 말은 너는 몰라도 너무 몰라서 앞으로 두려워할 것이 꽤 많을 거라는 주문처럼 들렸었다. 온몸을 떨었다. 편한 선배가 아닌 어려운 직장 상사가 주는 잔에 더없이 떨었다. 스물일곱이 만난 새로운 두려움이 오고 있었다. 겁도 났다. 이 잔을 넘기고 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세상이 달라 보일까? 술을 마시고 나면 세상이 돈다고 하던데 정말 그럴까?
소주!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일! 새로운 두려움!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길이었다. 지금 받고 있는 이 잔 속에서 그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 길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빨리 오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내가 거부한 길인 것 같았다. 김 선배 말이 맞았다. 나는 다가가야 할 세상과 한참 멀리 있었고, 한참 몰랐었다. 내가 세상을 보지 못하도록 가리고 있었던 것은 두려움이었고, 그 두려움을 가린 것은 알지 못함이었다. 아마도 내가 세상을 두려워하고 있는 동안 세상도 내가 알아주지 못함을 미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멍하니 잔속의 소주를 보았다. 모든 것에 나만 빠지면 될 것이었다.
그러면 나에게 들려 줄 말이 많은 세상이, 투명한 잔속의 소주가 나를 반길 것이었다. 내 생각의 크기가 엄지와 검지 사이 놓인 소주잔만한 것 같았다. 또한 그 잔을 뺀 만큼이 내가 모르고 있는 세상이었다. 나는 소주잔을 들었다. 나는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어둠 속에, 두려움 속에 떨게 했던 세상을 들고 있는 것이다. 아! 이만했구나! 아니! 이만큼이었다는 것조차도 잘 보지 못하고 있었던 세상이 나에게로 오고 있었다. 투명한 잔속에서 세상이 반갑다고 찰랑거리고 있었다. 천천히 잔에 입술을 갖다 대며 맛을 보았다. 생각처럼 아주 쓰지는 않았다. 마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좋은 맛은 아니었다. 옆에서 어서 먹어보라는 재촉의 말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눈을 힘껏 감고, 아무 생각 없이 목 끝자락으로 들이켰다. 혀끝에 닿은 소주는 톡 쏘는 맛과 함께 입안을 아리게 했으며 차가웠다. 까맣게 보일 것 같았던 소주는 검지 않았다. 검은 아스팔트 위에 하얀 아이스크림이 녹듯 그렇게 내 몸속을 채워가고 있었다. 소주는 두꺼웠던 내 두려움을 차츰 녹이고 있었다. 누가 두려움을 물리쳐야 한다고 했는가? 두려움은 물리칠 것도 아니고, 마실 것도 아니고 그냥 있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내 안에서 녹고 있는 것이다. 지금 들이키고 있는 소주처럼 말이다. 잠시 후 녹았던 것이 얼음을 만난 듯 내 머릿속은 다시 어는 듯했다. 눈은 무거워 잘 떠지질 않았다. 그래도 세상은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내 눈은 점점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지금! 나는 두려움을 모르는 나이가 되었다. 가끔은 두려움 없이 소주도 들이킨다. 그래서 두려움도 그리워지고 있다. 오늘은 소주 한 병 사들고 김 선배네 집으로 쳐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무릎 꿇고 한잔 받고 싶다.
“선배님! 저 이래도 멀었나요?” 묻고 싶다.
남편이 피곤한가 보다. 코 고는 소리에 잠도 오지 않는 쓰디쓴 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한 잔 따랐다.
캬 악!
소주는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