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틀

by 채선후

무언가 담게 될 틀은 비어있어야 한다. 비었다고 일부러 채울 필요는 없다. 이미 시간이 시나브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콩알만 한 틈까지 채우고 나면 그때는, 그때는 다른 이름이 되어 창틀이든, 대청마루 천장이든, 처마 밑이든 어딘가에 매달려 기억을 영글게 한다. 그래서 자꾸만 매달렸던 틀을 찾아 서성이게 한다. 그런 틀은 시간까지 흔드는 ‘기억의 틀’이 된다.


물 한 바가지가 뿌려진 마당에 먼지를 일게 할 소리가 있을까. 그 소리로 채울 수 있는 틀이 있을까. 있다. 마당은 시끄러운 소리를 담아내는 틀, 가득한 먼지도 담아내는 틀, 그런 것들이 뒤섞여 있는 지금을 담고 있는 ‘기억의 틀’이다.

가을볕 아래 바지랑대에 널린 이불소청이 졸리듯 펄럭이고 있다. 쇠파리 소리가 마당 그늘진 구석에서 졸고 있는 누렁이를 귀찮게 하는 점심 한나절이다. 위이∼ 잉윙윙. 누렁이 귀는 얼떨결에 쫑긋거리고, 땅바닥에 깔린 배는 꺼릴 거 없다는 듯이 축 늘어졌다. 오후의 고요가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 게으름을 가두려는 틀이 있으니, 그 틀은 좀 시끄럽다. 늘어진 게으름을 깨울 정도로 시끄럽다. 마당은 지난여름이 벗어 놓은 흔적들로 빈틈을 채우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치열히 내리쬐던 땡볕으로 채워졌었다. 마당에 널린 콩대에서 후덥지근한 열기와 물기 덜 마른 풋내가 났었다. 이제는 바싹 마른 콩대가 마당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주름진 손이 허리통 굵은 방망이를 들더니 마당 한복판에 던져 놓는다. 콩대는 방망이를 내리칠 때마다 어쭙잖게 탈탈거렸다. 털털털 탁탁타타다닥. 동네 여기저기서 콩 터는 소리가 담 너머로 들려왔다. 그래도 옅게 남은 풋내는 잔먼지를 내며 땅바닥에서 푸덕거렸다. 콩 터는 소리는 저녁 늦게까지 마당을 채웠다. 콩 털기가 어느 정도 되자, 주름진 손이 방망이를 내려놓았다. 콩알만 한 빈틈도 채우고 싶어서일까. 빈 꼬투리만 달린 콩대를 다시 땅바닥에 놓고 탈탈 털었다. 그런 후 빈 콩대를 한아름 안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를 불렀다. 그는 스무 살 청년이 다 되었건만 주름진 손인, 그의 아버지는 매사 못 미더운 잔소리를 했다. 그럴수록 아버지 목소리는 쇳소리가 더해져 카랑카랑했다.

“아야, 재식아! 마당에 떨어진 콩 좀 주워 담아라∼이! 거, 양재기 있지?”

그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예∼ 에.”

콩은 자기 몸보다 더 작은 틈새도 용케 찾아냈다. 마당 빈틈에 점박이처럼 흩어져 있는 콩알을 주울 때면 흙먼지 속에서 콩알을 골라내야 했다. 콩알은 쪼그맣기도 하지만 맹랑했다. 키를 까부를 때면 고 작은 것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대청마루 틈새까지 들어갔다. 그러면 젓가락을 대동하여 후벼대었다. 지금, 고 맹랑한 것이 그의 기억까지 흔들 틀에 담기려는 참이다.

오늘은 고것이 네모진 빈 틀을 채우는 날이다. 주름진 손은 아궁이에 연신 장작을 넣었다. 콩물이 가마솥에서 하얗게 끓어 넘치기 시작했다. 한 바가지 물을 부었다. 솥뚜껑을 닫자 또 한 차례 끓어올랐다. 또 물을 부었다. 이렇게 끓기와 물 붓기를 두서너 번 하다 보면 콩이 물러진다. 다 삶아지면 널따란 고무 통에 넣고, 절구 공이로 빻는다. 빻아진 콩을 한 손 가득 떠서 네모진 빈 틀에 넣는다.

틀은 오래 묵은 손때로 까맣게 바래있었다. 먼저 빈 틀에 베 보자기를 깔았다. 그 안에 빻아진 콩을 꽉꽉 넣은 다음 보자기를 덮었다. 그가 콩으로 가득 채워진 틀에 올라서자 두 발 폭이 꼭 들어맞았다. 한 발, 한 발 놀렸다. 콩이 물컹거리며 발바닥을 간질거렸다. 이때 천천히 오래 밟아야 된다. 그래야 틀대로 모양이 단단히 잡히기 때문이다. 밟는 것은 늘 그의 몫이었다. 그는 발바닥에 힘을 주고 꾹꾹 밟았다. 틀 안에 콩은 밟을수록 메주가 되어갔다. 다 된 메주는 새끼줄에 묶어 볕 잘 드는 대청마루 끝에 매달았다. 겨울 동안 누런 메주는 허연 곰팡이를 피우며 영글어 갈 것이다. 가을볕이 쓸쓸히 툇마루를 훑고 지나가고 있다. 그는 마루 끝에 앉았다. 메주는 처마 끝에 매달려 있었다. 콩은 마룻바닥 빈틈을 차지하던 때를 기억이나 할까. 메주는 찬바람과 냉랭한 볕으로 채우고 있던 마당을 기억이나 할까. 메주 틀 위에서 제 모양이 흩어지지 않게 꼭꼭 밟아주던 그의 발바닥을 기억이나 할까. 메주는 지난여름의 기억을 영글게 하고 있었다. 차츰 ‘콩’이 남긴 흔적들도 마당에서 비어지고 있는 겨울이었다.

어머니! 제가 오늘 무엇을 했는지 아시는지요? 메주를 띄웠습니다. 예전에 어머니처럼 메주 틀 위에 서서 말랑하게 삶아진 콩을 밟았습니다. 새끼줄도 꼬아 대청마루 끝에 메주를 매달았습니다. 이제부터 보드랍던 메주도 서서히 굳어지겠죠. 어머니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처럼요. 아! 어머니! 언제쯤 돌아오실까요. 저는 어머니가 오시는 날까지 매달린 메주를 보며 대청마루 끝을 서성일 것입니다.

그날, 그는 흩어져가는 어머니 얼굴을 틀에 단단히 가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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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틀을 좋아하지 않는다. 답답하게 가둬 놓는 거 같아서다. 하지만 ‘가둔다’는 말이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요즘은 기억이 종종 풀어헤쳐지고 있다. 엊그제 보던 얼굴도 긴가민가 헤맨다. 그래서인지 기억만큼은 어느 틀에 꽉 갇혀있었으면 한다. 사진처럼 말이다. 사진은 흩어지고 있는 기억을 잘 가둬놓고 있는 ‘기억의 틀’이다. 내게는 그런 기억의 틀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창틀이다. 그 틀 앞에서는 희미해져가는 기억도 잊지 않고 찾아온다. 그래서 창틀 앞에 설 때면 꼼꼼히 잘 봐두려 한다.

창틀은 기억의 흔적을 찍어둔 사진틀이다. 그렇게 찍어둔 사진은 좀처럼 낡지 않는다. 흔적 없이 지워졌다 해도 그 틀 앞에만 서면 생생히 떠오른다. 마음에 담아 둔 사진틀이기 때문이다. 창틀 앞에서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 집은 창틀이 커서 겨울이면 웃풍이 세었다. 그것이 겁이 났다. 겨울이 시작되자마자 비닐막이를 사다 창틀을 꼭꼭 동여맸다. 그 탓에 찬바람은 덜 들어왔지만 봄꽃이 피도록 창문을 열어보지 못했다. 분명 가로수에 눈은 쌓였을 것인데 겨울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이다. 날이 따뜻해지더니 비닐막이 떨어졌다. 걷어내자마자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방안이 봄 햇살로 환해졌다. 벚꽃이 눈송이처럼 피어 있었다. 내 기억이 흔들렸다. 벚꽃을 따라 십여 년 전 아버지 장삿날 풍경이 창틀 가득 찾아왔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날은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한 봄이었다. 그때는 눈물밖에 나올 것이 없었다. 햇살만이 내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상여꾼들이 석관을 메고 오르는 선산은 무척이나 질퍽했다. 선산을 오르는 발자국들은 도장처럼 찍혀있었다. 지우기 싫은 인연들의 발자국을 틀에 찍어 놓기라도 하듯 또렷했다.


창문을 닫았다. 그래도 발자국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원고지 앞에 앉았다. 하얀 원고지 위로 월남에서 막 전역한 젊은 청년이 찾아왔다. 그는 국방색 모자를 삐딱하게 썼고, 통기타를 들고 환히 웃고 있었다. 1946년생 최재식, 그는 내 아버지다. 원고지 글씨들이 자꾸만 질퍽한 발자국들이 되었고, 그 발자국들은 다시 아버지 얼굴이 되었다. 그는 내게 기억의 사진첩을 내밀었다. 차곡차곡 끼워진 사진 한 장, 한 장이 기억의 틀이 되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내 가슴 속 사진틀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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