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쟁

by 채선후

싸움은 이기고, 진 자를 남기지 않는다. 주먹을 휘두를 땐 이긴 자가 보인다. 그래서 때리는 자는 이길 자이고, 맞은 자는 곧 질 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싸움이 끝나면 이긴 자와 진 자로 남는 게 아니라 상처를 준 자와 상처를 받은 자가 있을 뿐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그것도 잊게 된다. 그냥 상처만 남는다. 모두 상처로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상처와 상처 주인이 싸우게 된다. 그때는 지우기 위한 싸움이다.

더 묘한 것은 싸운 자들은 상처를 지우기 위해 또 다른 싸움터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긴 자는 더 작은 싸움 속에서 많이 져주려 한다. 자신이 준 상처가 크지 않다고 위안 받기 위해서다. 진 자는 더 큰 싸움 속으로 도망친다. 받은 상처가 크지 않다고 확인하기 위해서다. 상처가 온 몸을 휘감아 괴로워하는 자 위에 올라섰을 때, 그때는 싸움이 아닌 전쟁을 택한다. 어찌 되었든 상처와 싸우기 위해 화염 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여기, 그런 화염 속을 스스로 뛰어든 자가 있다. 그가 뛰어든 화염구덩이는 좀 멀리 있다. 떠나오던 날 단단히 각오는 했었다. 나름 전쟁터가 아닌가. 그에게 전쟁은 이미 월남을 가기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모진 세상살이를 술로 위로받는 아버지를 향해서, 어머니를 앗아간 세상을 잊기 위해서 총부리를 겨누고 싶었다. 화염은 망설임 없이 시뻘건 불을 뿜어댔다. 그 불은 산목숨에 달라붙어 목숨 줄을 조이며, 가슴 속 깊이 박혀있던 상처들을 태워댔다. 진한 피 냄새를 풍기면서 말이다.

그는 총을 잡았다. 방아쇠 건너 아버지가 술에 쓰러져 있었다. 아버지 얼굴에서 밤새 쏟아 부은 퀴퀴한 술 냄새가 풍겼다. 거적처럼 누워있는 몸에서는 청자 담배 냄새가 짙게 배어났다. 손에 점점 땀이 고여 왔다. 축축한 방아쇠에 손가락에 힘을 들어가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아버지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썩은 내가 바로, 코앞에서 나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모든 것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순간 약지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오른쪽 눈을 더욱 삐딱하게 찡그려 보았다. 저 너머에서 화약 냄새가 더운 바람을 타고 넘어오고 있었다. 순간 어지러웠고, 사방은 컴컴해졌다. 어둠 속에 썩은 아버지의 입 냄새가 아니라 달짝지근한 어머니 젖 냄새가 고여 있었다.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최 병장님! 최 병장님! 정신 차리세요!”

“박 상병! 박 상병! 빨리! 위생병 불러! 부상자 또 없나 빨리 확인해!”

“분대장님! 분대장님! 최 병장 머리에서 피가 계속 납니다! 그리고 메콩강 부근부터 혼바산 일대에 베트콩들이 수류탄을 쏟아 붓고 있답니다! 중대장님께서 후퇴를 명령하셨습니다!”

“백마 부대! 백마 부대 후퇴!”

그 후 그는 머리에 박힌 파편 조각을 빼내지도 못하고 째진 살들을 꿰매기만 했다. 그는 꽤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있었다. 눈을 떴을 때도 여전히 어두웠다. 머리는 움직일 수 없었다. 얼굴 전체에 붕대를 감은 채 생각했다. 말들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움처럼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몇 가지 말들은 어둠 속에서도 싹을 틔워 자라났다. 싹은 점점 큼직한 물음이 되어 어둠을 짙게 도배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덤덤히 질문을 던졌다. ‘무엇 때문에 낯선 월남 땅까지 와 있는 것일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어머니’라고 답하고 있었다. 없는 ‘어머니’는 그를 더없이 거칠게 했다. 닥치는 대로 부수고 싶었지만 주먹에 힘을 주고 참았다. 가만히 굵은 주먹을 억눌렀던 지난 시간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눌린 시간은 빛이 없는 터널처럼 어둡고 길었다. 차츰 어둠 속에서 욕망도, 갈애도 스러져갔다. 다음에는 ‘어머니’라는 이름이 스러지면서 아버지와의 부딪힘이 스러졌고, 죽도록 미워했던 느낌이 스러졌다. 그를 괴롭혔던 슬픔도 차츰 스러졌다. 어둠도 차츰 스러졌다.

조국 태양 빛이 이국보다 뜨거웠던 여름 어느 날, 그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조국 땅으로 돌아왔다.

~~~~~~~~~~~~~~~~~~~~~~~~~~~~~~~~~~~~~~~~~~~~~~~~~~~~~~~~~~~

그는 내 아버지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던 상처 없는 딸이다. 아버지가 월남전쟁에서 얻은 육신의 상처는 마음 속 깊이 있었던 상처를 더 깊게 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식구들 앞에서 곪고 있는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셨고, 오히려 자식들에게 올 상처까지도 막고 계셨던 아버지셨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나도 아버지처럼 자식들에게 올 상처를 위해 방패막이가 되고 있는 어미가 되었다. 나 역시 몸 안에 있는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더 큰 싸움을 찾아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시간은 내가 도망칠 것도 없이 이미 전쟁터로 데려다 놓았다.

지금! 나는 아버지처럼 낯선 땅에서 총을 겨누고 있지 않다. 또한 아버지를 괴롭혔던 골 깊게 박힌 파편도 없다. 그래도 여전히 괴롭다. 아버지를 알아주지 못함은 깊숙이 박힌 파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파편은 미치도록 책 속으로 돌아다니게 하고 있다. 전쟁하듯 말이다.

keyword
이전 11화부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