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렇게 어려운 거였어?
벼랑 끝에서 내린 일생일대의 선택.
"웨촬? 신행? 스드메? 버진로드? 그게 뭐야?"
결혼식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나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은지 몰랐다. 나에게 결혼이란 "그냥 날 잡고 결혼식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정도였다. 얼마의 비용이 드는지, 언제부터 계획해야 하는지,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시기는 아직 결혼식에 대한 것들이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던 때다. 어느 햇살 좋은 시월에 나와는 정반대인 여자친구(지금의 아내)가 나와 함께 웨딩박람회에 가자고 제안했다.
아내는 웨딩박람회에 가기 전까지도 이미 결혼식을 한 번 해본 사람처럼 이런저런 정보들을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그건 주변에 결혼하신 여러 지인분들과 준비 중인 친구들, 그리고 폭풍 검색이 모아 온 엄청난 정보력이었다. 반대로 나는 웨딩박람회가 뭔지 가면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결혼을 하는데 박람회까지 가야 하나?' '웨딩박람회에서 인연이 될 만한 사람을 소개해주는 그런 것도 하나?'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아내가 가자고 제안했던 웨딩 박람회는 어느 호텔에서 진행되었다. 평소에도 호텔을 가볼 일 없었던 나는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들어가도 되는 곳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호텔 직원에게 "여긴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쫓겨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고 2층에서 열리는 박람회를 가기 위해서 올라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계단으로 가야 하나?' '엘리베이터를 타도 괜찮은가?' 터무니없는 생각이 나를 쫄보라고 각인시켜 주듯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내가 한 걱정과는 다르게 너무나 아무 일 없이 올라간 우리는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고 입장했다. 박람회장 앞 복도(?)에서 명단을 확인했는데 확인한 후 박람회장으로 입장하면서의 첫 느낌은 '작다!'였다. 40평 남짓하는 직사각형의 공간과 호텔스러운 붉은 계열의 바닥 카펫, 화려한 조명과는 상반대는 편안한 노란 분위기. 부스는 세어보진 않았지만 10개 어간의 부스들(웨딩플래너 셋, 여행사 하나, 예물예단 하나, 양복 하나, 한복 하나, 가전 하나 등.)이 박람회장 벽 바깥쪽에 붙어서 박람회장의 중앙을 지나 서로가 바라봐지게 나란히 둘러져 있었다. 가장 먼저 우리가 안내받은 부스는 웨딩플래너 부스였다. 웨딩 플래너란 결혼식 진행 간에 해야 하는 이런저런 예약들을 잡아주고 업체 측에 우리의 요구사항 등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한다. 부동산으로 보자면 공인중개사 정도이지 않을까. 웨딩 플래너와 마주 보고 앉아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내와 웨딩플래너가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나누었고 둘이서 나누는 이야기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들이 오갔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신부님 웨찰은 정하셨어요?", "신부님 스드메는 어떻게 하시나요?" "그곳 버진로드를 보신 적이 있나요?" 등이 있다. 지금에서야 들으면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혼란 그 자체였다. '웨촬'은 '웨딩촬영', '스드메'는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버진로드'는 '예식장 중앙의 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기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었으며 그나마 한마디 했던 말은 "그게 뭐야?"였다. 그 후 웨딩플래너께서 얌전히 있으면서 듣고 지켜보라는 의미인지 먹으라고 과자를 주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자로 아직 떨어지지도 않은 당을 채우며 인형처럼 멀뚱히 앉아서 이야기하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20분 정도였던가 설명을 들으며 가만히 앉아서 과자를 5개나 먹었다. 그러는 동안 설명은 끝났고 본격적으로 '선택의 시간'이 찾아왔다.
'선택의 시간'이란 이제 설명은 다 들었으니 웨딩 플래너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정하는 것부터 어떤 업체와 할지부터 날짜는 언제로 잡을지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할지를 정해야 했다. 웨딩플래너의 상담이 끝나고 가장 먼저 우리가 한 일은 웨딩촬영을 진행할 스튜디오를 고르는 일이었다. 플래너는 호텔 박람회 공간의 정 가운데 지점에 네모난 기둥을 가리키며 "샘풀북이 놓여 있으니 하나씩 편하게 둘러보세요"라고 했다. 그곳에는 각 스튜디오에서 올려둔 웨딩촬영 앨범의 샘플북이 있었다. 그냥 있었다 정도가 아니라 '쌓여' 있었다. 보기에 한 열다섯 권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샘플북을 하나하나 넘겨보며 원하는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선정하는 기준은 원하는 색감, 원하는 구도, 원하는 테마, 원하는 장소 등을 종합해야 한다. 나는 평소에도 딱히 원하는 게 없는 사람인데 열다섯 권의 샘플북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니 정말이지 혼란스러웠다. 앨범을 다섯 권 정도 보고 나니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어디가 괜찮은 거 같아?". 그렇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모든 앨범은 나에게 비슷비슷했고 나는 사진의 색감이나 구도나 테마에 대해서 느껴지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고 약간의 교육을 받았다. 이 앨범은 색이 좀 번지는 느낌이고, 이 앨범은 인물이 중심이고, 이 앨범은 배경이 어떻고 저떻고 등등. 그렇게 속성강의를 듣고 다시 처음부터 살펴봤다. 앨범을 하나하나 살펴볼수록 간식테이블 위 과자의 개수는 하나하나 줄어들었다.
그렇게 또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아내는 고통받고 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어때 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어?". '아니. 전혀 모르겠는데'라고 속으로 소리쳤지만 지금 그 말을 한다면 싸늘한 화살이 나에게 날아올 것 같았다. 이제는 골라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이 많은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생각에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는 것만큼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 선택의 조건은 이랬다. 그나마 내 눈에 괜찮아 보여서 왜 괜찮은지 조금이라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아무거나 고른 느낌을 주면 안 되며,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아내의 취향이 맞을만한 그런 곳. 한참을 고민하는 나의 모습을 보는 아내는 그 상황이 재밌었던지 슬쩍 옆으로 돌아봤을 때 아내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좋아, 골랐어. 나의 픽은 이거야." 나는 인생에서 중대한 결정이라도 내리듯 심각한 표정으로 아내에게 내가 고른 샘플북을 내밀었다. 고작 이게 뭐라고 내 심장은 숙제를 한 뒤 선생님께 검사를 받는 아이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아내는 내가 고른 샘플북을 커버부터 한 장 한 장 진지하게 그리고 꼼꼼히 살펴보더니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말했다. "신기해, 내가 고른 곳이랑 같은 곳이야!". 그 많은 샘플북 중에서 같은 업체가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지만 어쩌다 보니 우린 같은 곳을 골랐다. '휴 다행이다.' 역시 우린 천생연분이야 라는 눈초리로 서로를 짜릿하게 바라본 후 혹시 상술 아니냐며 다른 샘플북 업체이름을 찾아보자며 뒤적거렸더니 다행스럽게도 다른 샘플북들은 모두 다른 업체들이었다. '물론 여기 올라와있다는 거 자체가 영업을 톡톡히 해냈다는 거겠지...'. 고민이라는 고통에 둘러싸여 벼랑 끝까지 내몰린 순간에 내가 내렸던 선택이 아내와 같은 선택이라는 사실이 다행스럽기도 하면서 나 또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다른 곳을 골랐다면 아내는 나에게 "둘 중 어디를 할까?"라고 물었을 테고 나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아내가 고른 곳으로 유도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너무 성의 없어 보였다면.. 어땠을까, 한소리 들었으려나.
앨범의 업체이름을 외우고 플래너에게 돌아갔다. 업체 이름을 이야기하면서 호들갑 떨듯 조금 전 있었던 결정하게 된 스토리를 이야기를 하자 플래너분께서 기분 좋은 비즈니스 웃음을 선사해 주셨고 웨딩촬영을 위한 스튜디오가 확정됐다. 스튜디오에 대해서 기본적인 설명을 듣다가 위치를 알게 됐다. '뭐? 한 시간 반이나 가야 한다고?' 하필 고른 곳이 가장 멀리 있는, 심지어 타지로 가야 하는 스튜디오였다. 나의 놀람을 보셨는지 플래너께서는 "한번 더 둘러보고 오시겠어요?"라고 하셨다. '그 많은 곳 중에서 왜 하필 여기를 골랐을까...' 나는 더 볼만한 여력도 없으며 그런다고 더 가깝고 좋은 곳이 나타나리라는 보장도 없었기에 변경하지 않고 진행하기로 했다. 나의 퀭한 모습을 보고 아내는 이해라도 해주는 듯 변경하지 않는 것에 동의해 줬다. "다음은 결혼반지 보실 건데 상담 중이라 허니문 먼저 상담하셔도 괜찮으실까요?". 우리는 좋다 말했고 허니문 상담을 하러 이동해서 새로운 상담사와 마주 앉았다.
상담사는 나의 퀭한 모습을 보고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우리의 여행 취향이나 가봤던 곳들을 물으시며 상담을 이어나갔다. 상담은 5분 정도만에 끝이 났다. 상담을 마치시며 우리에게 한마디 말을 남기셨다. 그 한마디에 우리의 한 달짜리 신혼여행의 모습이 짙고 선명해졌다.
웨딩박람회를 가서 상담을 받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이렇게까지 결혼을 해야 하나?'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야기도 꺼내 봤지만 요즘엔 다 이렇게 한다고 하더라. 우리를 위한 결혼인지 잘 보이기 위한 결혼인지 좀 혼란스러운 면이 있었다. 물론 나만의 결혼이 아니라 아내의 입장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 원하지 않는데 그런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는 게 참 마음이 아팠다. 비용은 우리가 내는데 시스템은 업체를 따라야 한다니. 결혼식 준비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내 마음은 묵직한 돌덩이가 들어앉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돌아다니고 상담을 받고 알아보고 하다 보니 결혼을 한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나고 기분이 좋았다. 굳이 느낌을 설명하자면 위가 막혀있는 건물 안에서도 따뜻한 햇살이 내리는 느낌이었다. 힘들고 싫고 짜증 나는 일과 행복은 별개의 일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