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 표현의 중요성
현관 벽은 우당탕탕 몇 번에 원래 없었다는 듯 깔끔하게 사라졌다. 사실 좀 과한 표현이다. 딱 봐도 벽이 있던 자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마음은 탁 트인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다. 현관은 새삼 좁아 보였고 거실은 새삼 넓어 보였다. 시간은 세시쯤. 폐기물 처리도 웬만큼 했고 나름대로 정한 퇴근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창호 설치가 완료됨에 따라 마감을 위해서 그 주위에 충진 해둔 우레탄 경질폼을 제거하기로 했다. 나는 안방에 들어갔고 아내는 현관 바로 옆 방인 세탁실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지 한 3분 정도 되었을 때 아내는 나를 불렀다. "오빠 이게 원래 이런 거야? 한 번 봐줄래?" 그 모습을 본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핫도그에 소시지가 빠진듯한 허전한 모습이었다. 나는 이상하다고 판단했고 곧장 창호를 맡긴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의 목소리는 약간 낮은 목소리였다. 그럴 만도 한 게 시공 전에는 일정이니 뭐니 하면서 통화를 할 일이 많지만 시공이 된 후에 하는 통화는 하자가 생겼을 때 빼고는 크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도 너무 진지한 톤으로 하지 않았고 가볍게 안부인사를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를 건 본론을 말씀드렸다.
창 시공은 잘 됐는데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어서 전화를 드렸다는 나의 말에 사장님은 이야기하라며 답하셨고 나는 우레탄폼의 속이 뻥 비어있다는 말씀을 곧장 드렸다. 나도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하면서 우레탄 폼에 대해서는 많이 익숙한 상태였다. 그냥 내가 다시 쏘면 됐겠지만 사장님께서 아셔야 직원분들에게 전달이 될 테고 다른 집에서는 이런 피해가 생기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나의 기분을 조금 깎는 답변이었다. 답변은 이랬다. '잘 모르셔서 그럴 수도 있는데 우레탄폼을 과하게 쏘면 팽창되면서 프레임이 휠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프레임이 휠 것을 예상했으면 애초에 잘라낼 폼도 없을 정도였어야 했다. 하지만 폼은 팽창해서 벽 밖으로 부풀어있었기에 프레임이 휠 것을 생각해서 적게 쐈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답변에 나는 약간 욱하는 마음이 생겼다. 내 마음은 단지 잘못 시공된 모습을 전달함으로 인해 사장님네 회사의 시공에 조금 더 신중함이 기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가격을 깎아달라는 둥 재시공해달라는 둥 뭐 그런 말을 할 심산도 아니었다. 어차피 나도 여기저기 폼을 사용할 일이 많으니 내가 살펴보며 충진 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단지 내 불편한 마음을 전했고 그에 대해서 소소한 사과나 내가 시공함으로 인해서 번거로운 발걸음 하지 않음에 대한 약간의 감사정도를 바랐었다. 하지만 다 변명뿐이었고 내가 잘 몰라서 그런 거다라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분명히 잘못된 시공에 대해서 변명만 돌아오는 대화에 지쳐버렸고 제가 시공할 거긴 한데 알아두셨으면 해서 전화드린 거다라며 한껏 지친 상태로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나의 오지랖 같은 민원은 아무도 만족하지 못한 채 공기 중으로 증발해 버렸다.
다음이야기
다음날부터는 전기공사가 시작되었다. 뭔가 창호공사 이후 조금씩 그저 철거가 아닌 '시공'에 대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걱정도 밀려왔지만 설렘도 가득 밀려왔다. 우리는 집에 들어가서 조명의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의논했고 이런 조명 저런 조명 많이도 알아보고 고민했다. 하지만 우리 둘의 의견은 결국 같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 목적지는 바로 '간결하고 단순하게'였다.
전기공사는 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부딪혔다. 난관은 배선을 위해 전선관에 전선을 집어넣는 과정에 있었다. 너무 많은 전선을 넣은 까닭일까 아니면 실력의 부재일까.
번외.
우리는 항상 이렇게 지내지만 아직 한 번도 소개되지 않은 내용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우리의 끼니. 우리는 공사를 하면서 매일매일 거액의 식비를 들이며 사 먹을 수 없어서 아침이 되면 도시락을 챙겨서 나온다. 챙겨 나온 도시락은 점심이 되면 차가워지기 때문에 현장에 오자마자 허리찜질용 온열매트로 감아두고 보온을 해뒀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할 일들을 계획하고 아내는 도시락을 싼다. 그리고 현장에 들어오면 나는 자재를 확인하고 아내는 도시락의 보온을 책임진다. 이게 우리 하루의 시작이고 현장 도착해서의 루틴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아내 덕분에 매일매일 따뜻한 도시락을 먹을 수 있다. 아, 물론 이 시기는 우리가 결혼하기 전이기에 여자친구 덕분이다. 이 날의 메뉴는 간장불고기 덮밥이었다. 나름의 셀프 디저트바도 있는데 그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소개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