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걸까?
우리가 공사 중인 아파트는 엘리베이터를 나오면 좌우측으로 현관문이 마주 보고 있는 구조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우측엔 신발장 좌측엔 유리가 붙어있는 벽이 있고 정면에는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중문이 위치되어 있다. 모든 것들이 다 그렇겠지만 중문 또한 많이 낡은 상태라 교체를 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중문을 없앨 수도 있지만 나는 집에 중문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중문은 여름이던 겨울이던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 바깥의 더운(혹은 차가운) 바람이 유입되는 걸 막아주기 때문에 집 내부의 보온 효과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아내에게 중문은 있었으면 좋겠다며 아내에게 말했고 아내는 수렴해 줬다.
중문의 철거는 창호공사를 진행하면서 어차피 창틀 철거를 하니 겸사겸사 함께 철거를 해주시기로 했다. 보통 시공팀은 타 공정에 대해 일절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럼에도 창호팀에서 중문을 철거해 준 이유가 있다. 창호 상담을 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창호 상담을 받으며 사장님께 혹시 중문도 취급하시냐 여쭤봤는데 우리가 취급하지는 않지만 원한다면 주문을 해줄 수 있다고 하셔서 책자 하나를 받았다. 그리고 책자를 살펴보며 아내와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창호사장님께서 모르는 게 있으면 이쪽으로 전화를 하라며 연락처 하나를 주셨다. (아마 둘이서 너무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어서 사장님께 민폐를 끼쳤던 게 아닌가 싶다.) 연락처의 주인은 창호사장님과 간간히 일을 함께하는 문을 취급하는 업체인 듯했다. 우리는 감사하다며 상담이 잘 진행되면 여기서 진행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사장님께서는 업체를 낀 손님이 아니라 개인으로 찾아와 줌에 감사하다며 중문을 새로 할 거라면 공사 당일에 중문 철거를 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철거는 힘든 일이기에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공사 당일이 되어 창호직원분들께서 공사를 진행하셨다. 그런데 다른 창들은 다 철거가 되었고 이제 설치가 진행되기 시작했는데 아무도 중문은 신경 쓰지 않았고 그렇기에 중문은 아직도 문 하나 떼어지지 않은 본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조바심이 생겨 책임자분께 조심스레 자초지종을 설명드렸다. 책임자분은 자초지종을 모르고 계셨고 확인을 해보기 위해 창호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들은 후 책임자분은 전화를 끊었고 이내 시공자분께 중문도 철거해야 한다며 전달을 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없이 잘 진행이 되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기술자분의 표정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마치 '왜 우리가 중문까지 철거를 해야 하냐'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앞서 말했듯 시공팀에서는 타 공정에는 일절 손대지 않고 손을 대더라도 기분이 굉장히 상하는 듯했다. 기술자분께서는 투덜투덜하시다 우리에게 'ㅇㅇㅇ업체'에서 중문을 시공받냐고 물어오셨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기술자분의 한숨을 적나라하게 들으며 우리가 소개받은 업체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업체는 창호사장님의 아는 사람에 어쩌고 저쩌고 한 관계였다. 기술자분께서는 그 업체에 대하여 항상 이렇게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창호팀에게 넘기고(혹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데 창호사장님께서 해주고) 힘든 철거는 본인들이 하지 않고 깔끔한 상태에서 설치만 하려 한다며 업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비록 혼잣말처럼 중얼중얼하셨지만 거기에 있는 모든 기술자분들께서도 공감하시는지 맞다며 혀를 차기도 하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중 "젊은 놈이 편한 것만 하려 한다" 같은 말들이 오가길래 나는 "그 업체 사장님께서 젊으신가 봐요"라고 물었고 돌아온 대답은 "우리 사장님한테는 거의 아들뻘일 거예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직 우리는 뵙지 못한 상태니 뭐라 말할 순 없었지만 정황을 살펴봤을 때 그 업체에 대한 묘한 불신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중문이 철거가 되면서 업체에 대한 흉흉한 소문과 찜찜한 마음이 남으며 소동이 일단락되었다.
창호공사가 끝나고 소개받은 "ㅇㅇㅇ업체(이하 O업체)"에서 방문 상담을 받기 위해 사무실에 찾아갔다. 사무실의 문이 건물 옆면에 있어서 건물 앞에서 전화를 하여 찾아갔는데 창호시공팀에서 이야기 한 대로 한 젊은 남자분이었다. 우리는 아무래도 나이 지긋하신 분들보다는 요즘 트렌드를 많이 알고 있지 않겠나 하는 안도감이 있었다. 시공 때에는 나이가 있으신 분들께서 노하우도 많고 여러모로 대처를 잘하시지만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절대 아니다. 터무니없는 주먹구구식도 너무나 많다.) 상담 때에는 좀 젊으신 분께서 해주는 게 고집이 세지도 않고 이야기하기가 편하다. 그렇게 우리는 간단하게 약 10분 정도 책자를 살펴보고 금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방문 일정을 잡고 사무실을 나섰다.
방문상담 당일날. 우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도배지를 뜯고 폐기물을 치우는 등 철거를 하며 사장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에 대해 나름 꽤나 진지한 우리는 도착예정시간이 다가올수록 시계를 보는 횟수가 잦아졌고 심지어는 혹시나 시끄러워서 전화나 노크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약속시간 5분 전에는 큰소리 나는 일은 중단한 상태로 정리도 하고 수다도 떨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시간이 되어도 휴대폰도 현관문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이 한참이 흘러갔다. 우리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고 나는 이렇게 마냥 기다릴 수 없다며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나는 타이밍이라는 것을 참 신기해하는 사람이다. 주차장에서 빠져나가려 차를 타면 꼭 내 옆차주도 빠져나가려고 차를 탄다. 그런 타이밍들에 대해서 참 신기해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 타이밍이 발생했다. 일을 시작하려 공구벨트를 매며 옷맵시를 다듬자마자 전화벨이 울려왔다. 곧 도착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미 약속한 시간이 한참 지났기에 화가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냅다 화를 낼 수도 없다. 나름의 상황이 있었을 수도 있으니. 그렇게 우리는 다시 기다렸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방문한 사장님의 모습은 나를 심심한 실망감을 줬다. '누구시지? 아파트 주민이신가? 공사 구경하러 오신 건가?' 하는 느낌의 옷차림과 분위기였다. 그냥 무난한 일상복에 손에는 달랑 휴대폰 하나. 펜이나 노트 줄자 뭐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 '뭐,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으니까'라는 생각으로 어서 오시라며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업체에 방문해서 방문예약을 잡을 당시 중문 상담을 진행하면서 방 문도 함께 하시냐고 여쭸고 그렇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중문과 방문의 상담을 각각 진행했다. 중문은 우리가 정해둔 게 있어서 사이즈만 확인하면 되는데 여기서 일차로 충격을 받는 일이 생겼다. 업체 사장님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해왔다. "중문 사이즈가 어떻게 되죠?" 아내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뭐지? 우리 보고 사이즈를 묻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우린 "중문 사이즈는 직접 측정하셔야 하지 않나요? 저희가 재서 맞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라고 답했고 그에 돌아온 답변은 두 번째 충격적이었다. "여기서 여기를 재 주시겠어요? 제가 줄자가 없어서." 중문과 방 문 사이즈를 재서 주문하기 위해 왔으면서 줄자를 가져오지 않은 건 어떤 생각이었을까. 백 번 양보해서 여기 있을 거니 빌려 사용할 거라 치고 나는 내가 재는 게 싫어서 갖고 있던 줄자를 건네어 드렸다. 그리고 나는 세 번째 충격을 받는다. 업체 사장님은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랑 여기랑 여기 재 주시면 됩니다." 나는 터무니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속에서 화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창호사장님의 소개를 받았으니 나쁜 소리 하지 않으려 참았고 아내를 한번 쳐다보고 고개를 갸웃한 뒤 줄자로 측정을 해줬다. 그 당시 내 머릿속에는 온통 '이게 맞나?'라는 생각뿐이었다.
중문의 측정이 끝나고 방 문 상담을 위해 돌아섰다. 혹시나 문을 업체에 맡기게 되면 문틀은 업체 측에서 철거할 테니 상황을 보자라는 이야기를 아내와 나눈 상태여서 문짝만 떼어둔 상태였다. 창호도 교체를 하면서 창틀을 철거했으니 문도 교체를 하면 당연히 문짝과 문틀을 철거할 거라 생각했다. 혹시 몰라 나는 확인차 질문을 드렸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충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럼 문틀은 이대로 두면 되는 거죠?"라는 질문을 던졌고 업체 사장님은 "아니요 다 철거해두셔야 해요. 문 다는 사람은 철거 안 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설치는 하는데 철거를 하지 않는다니. 나와 아내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생활 중인 가정집에 문틀을 교체할 때도 소비자가 문틀을 철거해 두나요?" 돌아온 대답으로 나는 더 이상의 상담은 의미가 없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네 소비자가 철거를 해야 해요. 문 다는 사람은 철거를 안 해요. 그런 공구를 들고 다니지 않아요." 소비자가 철거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난생처음 듣는 말이었다. 예를 들어 창호공사 전 창문을 소비자가 철거해둬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창문은 커서 그렇다 치고 만약 보일러를 교체한다면 보일러를 소비자가 철거해둬야 한다는 건가? 하는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또한 문 다는 사람들도 들고 다니지 않는 공구를 일반 소비자가 들고 있을 리 만무하고 망치질도 제대로 못하는 일반 소비자가 문틀을 철거해둬야 한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답변이었다. 문틀의 두께를 상담하면서도 "문틀이 벽 두께에 맞지 않으니 벽에 목작업을 해서 두께를 문틀 두께에 맞춰두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상식적으로 문틀을 벽두께에 맞추는 게 맞는가 벽두께를 문틀에 맞추는 게 맞는가. 우리는 벽에 도배지밖에 떼어낸 것이 없고 애초에 문이 달려있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그럼 애초에 달려있던 문틀은 어떻게 달아둔 것이란 말인가. 기성품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실측해서 주문 제작을 하는 건데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된다니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린 그 상황을 끝으로 이 업체에 대한 마음을 접었고 이야기를 하는 둥 마는 둥 상담을 이어가다가 상담을 마치고 사장님을 돌려보내게 되었다. 상담하는 동안 벽이나 문에 손 한번 대지 않고 줄자도 빌려 쓰고 본인 손 더럽히지 않으려 상담 중인 소비자에게 일을 시키는 등의 노력들이 우리의 눈살을 정말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이야기가 스쳤다. '창호팀 기술자분께서 해주신 이야기' 그게 정말 헛소문이 아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번 상담을 계기로 중문도 방문도 모두 우리가 달아야겠다 생각했고 여기저기 발품을 판 결과 금액도 터무니없는 이윤이 포함된 금액이었다. 무턱대고 해달라고 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스러운 업체였다. 첫 번째로 제대로 시공을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저런 사람에게 시공을 맡길 바에 거꾸로 달더라도 내가 하는 게 마음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테리어 사업에 아무리 사기꾼이 많다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상담이 끝난 후 우리는 더 이상 일을 해야 할 의욕을 잃었고 그대로 퇴근을 해버렸다.
다음날이 되어 현관 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뭔가가 잘못되었는지 현관벽에 큼지막하게 갈라지고 벌어진 균열들을 봐 버리고야 말았다. 이대로 뒀다가는 살면서 언젠가는 무너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크고 무서운 균열이었다. 나는 이 균열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