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의 벽에 양 사방으로 균열이 생겼다. 아니 이미 분해가 됐다.
네모난 공간에 네 방향으로 네 곳의 균열이 생겼다. 이건 무너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지 않을까. 이 모습을 보는데 마치 강 위 다리의 양 끝에 균열이 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세한 충격들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무너질 그런 다리의 형상이었다. 언젠가 무너질 다리라면 안전하게 무너뜨릴 수 있을 때 무너뜨리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나는 아내에게 이미 균열이 너무 심하게 가있어서 위험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네모난 공간의 하부까지만 철거하고 그걸 선반처럼 사용하는 게 어떻겠냐고 첫 번째 안건을 내놓았다. 아내는 개방감도 생기고 좋을 것 같다고 찬성하는 입장을 비췄다. 곧장 나는 베란다 벽 철거를 했을 때와 같은 공구들을 들고 철거작업을 진행했다. 장비의 선을 콘센트에 연결하고 대차게 앞에 나섰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난관에 부딪혔다.
베란다 벽 철거 때는 창 틀 하부만 철거하기에 큰 위험이나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상부에 인방이 달려 있었다. 심지어 콘크리트 덩어리라 혹여나 중간에 떨어진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것 같았다. 처음에는 양방향으로 균열이 가 있으니 덩어리 덩어리로 덜어내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계획을 바꿨다. 가운데 상부 인방을 망치로 때려서 미장면 내부의 조적벽돌을 조금씩 덜어내기로 했다. 비록 힘이 더 들고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나에게는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그렇게 망치로 한 덩이 한 덩이 떼어냈고 혹여나 무너지더라도 손으로 바칠 수 있을 정도를 두고 중앙부를 깬 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철거를 시작하면서 혹여나 벽돌들이나 잔해들이 떨어지면서 아랫집에 너무 큰 소리가 난다거나 묻혀있는 배관에 문제가 생길까 싶어 사전에 철거해 둔 벽지뭉치를 바닥에 깔아 뒀었다. 그 덕에 큰 소음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측면 기둥과 하부. 상부의 인방을 철거하고 좌우측을 살펴보니 둘은 다른 공법의 기둥이었다. 현관문 쪽에 붙어있는 기둥은 바닥부터 상부까지 하나로 된 아파트의 구조를 담당하고 있는 내력벽이었다. 내력벽은 안에 철근이 가득 들어있어서 철거를 하면 안 되기도 하고 혹여나 한다고 해도 쉽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중문옆에 붙어있던 기둥은 상부의 인방과 마찬가지로 조적벽돌로 쌓아 올리고 미장마감을 해둔 기둥이었다. 상부 인방을 떼어냈으니 이제 이 기둥을 철거할 차례다.
이 기둥은 인방보다 약 두 배 정도 더 크고 무거우니 위에서부터 차례로 떼어내며 철거를 해야겠다고 계획을 했었다. 그래서 망치로 때리고 떼내어 봤지만 기둥의 하부도 갈라져있어 힘을 받지 못했고 하부의 균열만 더 크게 생기기 마련이었다. 나는 이대로는 안된다 판단했다. 기둥을 그냥 통째로 넘겨야 했다. 넘긴 후 장비를 사용해서 깨고 폐기물 처리를 해야 했다. 이번에도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아까 상부 인방을 떼어낼 때보다 현관에 더 많은 도배지와 충격을 감당해 줄 만한 것들을 놓았고 혹여나 기둥이 넘어가고 어디든 구를 수 있기에 주변의 장비나 물품들을 멀리 치워뒀다. 사다리에 발 하나를 두고 유리가 붙어있던 벽에 발 하나를 올리고 기둥 상부를 잡고 조심히 밀었다. 밀면서도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소리가 상당할 거라 생각을 했고 혹여나 깨져서 파편이 튀면 위험할 거라는 생각도 했다. 더 좋은 방법이 없는가에 대해서. 하지만 내 손은 점점 기둥을 밀고 있었고 기둥도 넘어가면서 점점 상부로 무게가 실렸고 이제 손을 놓으면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넘기고 싶었지만 눈을 감으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몰라 오히려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겁이 나서 실눈을 뜬 채로 '에라이!' 하는 마음으로 손을 놓았다.
'풍!' 콘크리트 덩어리가 말아놓은 도배지 위로 떨어졌다. 다행히 굴러서 맨바닥에 떨어지거나 깨져서 파편이 튀거나 하진 않았다. '풍!' 하는 소리는 '쿵'보다는 푹신하면서 묵직한 표현을 하기에 적합한 표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소리가 났다. 마치 침대 매트리스 위에 무겁디 무거운 내가 뛰어들었을 때 나는 소리처럼.
상부 인방도 내렸겠다 기둥도 넘어졌겠다 이제는 하부만 남았고 윗 면을 다듬은 후 위에 유리를 얹던 목작업을 하던 마감을 하면 됐다. 그렇게 장비를 들고 울퉁불퉁한 면을 다듬기 위해서 일을 시작했다. 콰당탕탕탕탕탕탕 소리와 함께 잔해들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힘과 진동은 잔해만 떨어트린 게 아닌 하부의 조적벽 구조에도 힘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적벽돌하나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갔다. 나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판단했고 아예 조금 더 낮춰서 벤치로 사용해야겠다고 계획을 수정했다. 그렇게 벽돌이 떨어져 나간 높이에 맞추기 위해서 하나하나 철거하던 나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더 찾아왔다. 기껏 높이를 맞췄더니 마지막에 또 벽돌 하나가 깨져서 떨어져 나갔다. 마치 한 입만 더 먹을까 하다가 다 먹어버리는 퍼먹는 아이스크림처럼. 마치 다음 것만 보고 꺼야지 하다 날을 새 버리는 숏츠처럼. 이대로 가다가는 그냥 다 철거를 해버릴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차피 다 철거를 할 거라면 괜히 조심히, 오래, 힘들게 할 필요가 없는데. 그냥 확 깨버리면 편한데. 나는 귀퉁이 조각이 떨어져 나간 사각형의 콘크리트 덩어리를 현관에서 바라보며 3분 정도를 가만히 서 있었다. 철거를 한다면 나중에 어떻게 마감을 할 것인가. 철거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마감을 할 것인가. 혹여나 철거를 해서 마감을 한다 하면 어떤 디자인과 어떤 마감재를 사용할 것인가.
판단이 섰다. 나는 사각형의 콘크리트를 무자비하게 부숴버렸다.
넘겨둔 기둥은 바닥에서 마대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잘게 부쉈고 마대에 야무지게 담아 넣었다. 바로바로 청소를 한 이유는 남아있는 폐기물을 두 번째로 버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버리겠다고 예약을 해 둔 상태였기에 오늘 버릴 수 있는 폐기물들은 싹 버려야 한동안 폐기물이 다시 쌓이더라도 여기저기 옮기며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 방치되어 있는 폐기물이 많을수록 작업도 작업이지만 오며 가며 다칠 위험이 있기에 벌리 수 있을 때 많이 버려둬야 했다.
아내와 나는 벽 철거를 끝으로 청소에 몰두했고 또다시 현관문에서 1층까지는 아내가, 1층에서 두 번의 계단을 거쳐 폐기물 처리장소까지는 내가 서로 분업을 하여 폐기물 처리를 진행했다. 이번에도 폐기물 양은 전과 비슷하게 40포대 정도 되었고 한 번 해봤다고 나름 야무지게 잘 쌓아서 주민분들에게 불편이 생기지 않게 했다. 그리고 뿌듯해하며 사진을 찍는 내 앞에 나타난 아내고라니. 내가 사진을 찍을 때면 어디서 이렇게 나타나는지 내 사진첩에는 아내가 어디서 튀어나온 사진들이 상당히 많다.
폐기물을 치운 집 안은 속이 후련할 정도로 깔끔해졌다. 좁디좁은 집이었지만 이렇게 넓었나 싶을 정도로 폐기물이 많아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제 큰 철거는 끝이 났으니 이렇게 많은 양의 폐기물이 나올 일도 없을 것이다. 아내와 나는 고생했다며 서로를 위로해 줬고 남아있는 시간 동안 잔잔한 일들을 손보며 집 곳곳을 돌아다녔다. 우리가 집중적으로 살펴본 곳은 창호공사가 끝난 후 우레탄 폼을 사용한 곳에 부풀어서 양생 된 우레탄 폼을 칼로 제거하는 일었다. 아내가 입구 옆 방에서 폼 제거를 하러 들어가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나를 불렀다. "오빠 이게 원래 이런 거야? 한 번 봐줄래?" 그 모습을 본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고 그대로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참고로 우레탄 폼을 제대로 시공한 곳은 칼로 잘라내도 내부가 노란색 폼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며 빈 공간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집의 상태는 폼이 빈 공간보다 더 보이지 않은 그야말로 시공이 아예 되지 않았다고 봐도 될 정도로 뻥 뚫어져 있었다. 나는 이 사태를 보고 한참을 생각하다 창호설치를 맡아서 해주신 사장님께 전화를 했다.
사장님과 통화로 설명을 했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끝은 기분이 상한 상태로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