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공아 다가오렴!
해야 할 일이 점점 줄어감에 따라 완공이 얼마 남지 않음을 몸소 느끼고 있다.
그간 일을 쳐내느라 바빴다는 핑계로 미뤄뒀던 자잘한 일들이 산더미로 쌓여 있었다. 이번엔 그 일을 다 해버렸다. 콘센트 커버를 씌우는 일부터 여기저기 잔손 가는 것들을 많이 했다.
우리가 사용한 콘센트나 스위치는 nano사의 제품을 사용했다. 더 비싼 제품이나 디자인적으로 더 좋은 제품들이 많았지만 크게 욕심을 내지 않았다. 콘센트는 돼지코가 꽂히기만 하면 되며, 스위치는 켰다 껐다만 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보편적인 브랜드에서 아내의 취향을 고려하여 제품을 선택했다.
이름이 나노 슬림이었던가. 아내의 픽이라 잘 모르겠지만 깔끔하니 아주 마음에 들었다.
각 콘센트와 스위치(이하 배선기구)의 커버를 아내가 씌웠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주먹으로 톡톡 쳐서 끼워 넣었다. 모든 곳을 다 했다고 이야기했지만 아내가 들고 다니던 커버박스에는 하나의 콘센트 커버가 남아있었다. 한참을 돌아봐도 없다고 하는 아내에게 에어컨과 주방을 확인해 보라는 말을 했다. 그랬더니 아내는 콘센트라 바닥만 보고 다녀서 위에 있는 에어컨 콘센트를 놓쳤다고 말했다. 그렇게 모든 배선기구의 커버를 씌우고 아내는 베란다로 향했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창고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실이 하나 있다. 깊이는 약 1m 정도에 폭은 60cm 정도 되는 창고다. 우리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작은데 창고의 위치상 엘리베이터 뒤편 공간을 양쪽 집이 창고로 사용할 수 있게 설계해 둔 것 같았다. 좁은 엘리베이터가 큰 단점 이긴 하지만 반대로 창고의 활용도가 좋은 건 큰 장점이다. 그 창고를 제외하고 다른 문들은 교체했지만 이 문은 교체하지 않았다. 내가 옛날문 하나는 남겨놓자는 그런 낭만 섞인 말을 한 이유가 크다. 만약에 우리가 공사하기 전에 누군가 공사를 하여 창고문을 요즘 abs도어로 교체해 뒀었다면 오히려 주저 없이 교체했을 건데 이 집이 지어질 당시 문 그대로라 나름 의미부여를 해서 창고문은 교체하지 않았다. 상태도 괜찮고 기능적으로 문제도 없었기 때문에 도장만 하기로 했다. 페인트는 베란다 벽에 칠하고 남은 백색 페인트로 3회 정도 칠을 해줬다.
도장을 하기 전 베란다 벽은 약가 노란빛이었고 문은 약간 푸르뎅뎅한 색이었는데 둘 다 백색으로 칠해줬다. 백색이 때가 많이 타긴 하지만 어차피 도장이라 때가 타면 다시 칠을 할 생각이다(물론 얼마나 오염되어야 칠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나는 도장했을 때의 텍스쳐를 좋아하는데 만약 나중에 전원주택에 살게 된다면 벽지가 아닌 도장으로 마감해 둔 집에 살고 싶다. 그럼 아이들이 커다란 스케치북 같은 벽에 마음껏 낙서도 하며 꿈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페인트 덧칠도 아이들에게 선물로 줄 심산이다.
아내가 배선기구에 커버를 씌우고 문을 도장하는 동안 나는 실리콘 작업과 각종 수전 교체를 진행했다. 베란다 하부에 타일과의 마감을 위해 실리콘을 발라줬다. 번거롭겠지만 실리콘은 반드시 눌러서 틈 사이로 채워 넣어줘야 한다. '실리콘을 잘 쏜다'는 많은 사람들이 고무헤라로 누름을 하지 않고 실리콘 건으로 한 번에 쏘고는 한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깔끔해 보이지만 틈 속으로 실리콘이 침투되지 않아 금방 누수가 생길 수 있다던가 자외선이 많이 닿는 곳이라면 탈락이 발생한다던가 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기 쉽다.
이 틈을 벌려둔 상태에서 공사할 때는 밑으로 물이 들어간다거나 이물질이 들어가면 꽤나 마음속을 찜찜하게 할 듯해서 어쩌나 고민했었는데 실리콘을 쏴두고 마음이 안심이 되었다.
수전교체는 보일러실과 베란다를 교체했다. 이 집을 처음 지으면서의 설계는 보일러실에 세탁기가 같이 들어있는 형태였지만 요즘에는 세탁기 사이즈가 커서 문으로 들어오지도 못하며 만약 들어온다 하더라도 제대로 열지도 못해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세탁기 문을 상부에서 여는 통돌이면 몰라도 우리 집은 드럼이기에 앞뒤로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방에 딸려있는 베란다의 담장을 허물고 세탁기 위치를 옮긴 것이다.
그래도 기존 세탁기 자리인 보일러실에는 냉수와 온수 모두 달려있기 때문에 뭘 하더라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수도꼭지도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기존에 있던 수도꼭지를 떼어내고 조금 더 세련된 형태의 수도꼭지로 교체했다. 교체 후에 물을 틀어보고 혹 연결부에서 누수가 있는 건 아닌지 살펴봤다.
교체하고 보니 냉온수를 따로 사용할 일이 없는데 기왕 바꾸는 거 샤워수전처럼 냉온수를 섞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설치할 걸 그랬다. 역시 해보지 않으면 뭐가 아쉬운지도 모른 채 지나게 된다.
베란다의 수전은 세척호스가 달려있는 제품으로 골랐다. 넓은 베란다에 물 뿌리며 청소를 해야 하는데 그게 좀 제한된다 느껴서 일반 수도꼭지가 아닌 샤워호스를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골랐다.
항상 오래된 설비를 건드리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님을 느낀다. 혹여 돌리다가 내부에서 깨져버리면 그건 정말 대공사가 되기 때문이다. 기존 수전을 풀면서 힘은 주되 한 번에 주는 게 아닌 서서히 힘을 올려가는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다행스럽게도 깨지지 않고 잘 교체되었다.
2회 차 도장을 마치고 3회 차를 위해 기다리는 아내의 마지막 일은 아파트 방송용 스피커 커버를 하얗게 칠하는 작업이다. 기존에는 은색이었는데 하얀 바탕의 집에 은색 스피커가 눈에 걸리기도 했고 락카에 호기심이 생겨 락카를 사용해서 백색으로 칠했다. 락카는 자칫 잘못하면 얼룩이 지는데 힘조절을 조금만 신경 쓴다면 누구나 해볼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작업이었다. 그저 락카를 흔들어 대상에 뿌리면 그만이다.
이제 자잘한 일들을 많이 쳐냈으니 다시 본 공사로 들어갈 계획이다.
공사가 끝나감에 따라 마감을 진행 중인데 마감에는 감각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는 마감기간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반대로 나는 섬세한 작업인 마감이 정말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