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리폼하기
공사 간에 늘 고민인 부분이 있었다. 그 고민은 대체 현관문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였다. 그렇게 내려지는 답 없이 계속 공사를 이어가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겼다. 우리는 얼마 전 아파트 방송용 스피커에 락카칠을 했다. 꽤나 성공적으로 칠이 입혀져서 아내와 같이 좋아했었다. 그러다 머릿속에서 번쩍하고 생각이 떠올랐다. '방송용 스피커도 철판이고 현관문도 철판이면 방화문도 락카로 칠하면 되겠다!'
그렇게 우리는 락카를 더 구매해서 현관으로 다가갔다. 락카는 백색과 함께 녹이 슬지 않게 메인 색상 전에 먼저 칠해주는 프라이머도 함께 구매했다.
현관문 도색을 하기에 앞서 먼저 진행한 일은 현관문에 붙어있는 손잡이 등의 액세서리를 떼어내는 작업이다. 내가 드릴을 사용해서 이것저것 분해를 했다. 도색을 하루 만에 끝낼 거라는 확신을 갖고 도어록을 분해했고 클로저와 우유투입구까지 모두 분해했다. 내가 분해를 한 뒤 아내가 투입되어 하드웨어가 붙어있던 자리를 사포로 면을 잡아줬다.
어느 정도 면이 잡아졌으면 퍼티를 사용해서 나사구멍들을 채워줘야 한다. 나사구멍들과 각종 흠집 난 부분들을 채워주고 한번 더 사포로 문질러주면 보기에는 구멍이나 흠이 보이지만 눈감고 손으로 만졌을 때는 요철들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 정도 되었다면 도색을 할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내와 나는 구매해 온 락카를 모두 꺼내고 프라이머를 먼저 모퉁이에 뿌렸다.
근데... 뭔가 잘못됐다.
우리가 생각했던 프라이머 색상은 투명하거나 흰색이어야 하는데 프라이머는 붉은빛이 도는 갈색이었다.
왜.. 대체 왜 이런 색인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색은 길 가다가 보이는 철 구조물에 뿌려진 그런 붉은 갈색이었다. 나는 프라이머를 메인 칠 전에 접착을 도와주는 정도의 제품이라 생각했는데 이 락카의 프라이머는 물론 방청이 되게 하는 제품이겠지만 혹시나 녹이 생기더라도 티가 나지 않게 그런 색상이 들어가 있나 보다.
만약 이 프라이머로 전체를 도포한다 했을 때 우린 백색 락카로 다시 이 갈색을 모두 덮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프라이머 락카를 500원 동전크기로 뿌린 뒤 우린 미궁으로 빠져 작전타임을 30분이나 가졌다.
물론 그 작전타임에서 우리는 충격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프라이머를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뿐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기에 우린 과감하게 프라이머를 포기했다. 매일 물이 닿는 곳도 아니고 현재 녹이 많이 슬어서 사용에 제한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바로 백색 도포를 진행했다. 긴장을 바짝 한 상태로 현관문에 백색을 뿌렸는데 우려했던 것보다 칠이 잘 올라붙었다. 하지만 그 기쁨의 순간도 30초를 채 가지 못했다.
멀리서 보면 흰색이 입혀지는 것 같았으나 가까이서 보면 또렷하다 싶을 정도로 기존 현관문의 색상이 가려지지 못했고 락카 가루만 잔뜩 날릴 뿐이었다. 그리고 칠해지는 면적에 비해 락카의 소요량은 엄청났다. 우리가 사 온 락카의 약 3배는 더 들어갈 것 같은 소모량이었다. 점점 칠이 입혀지는가 싶더니 일정 수준이 지나서 락카가 붙지 못하고 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방울은 지워지지도, 긁어지지도 않았다.
공사 중에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이었다. 아내와 나는 뭔가 방법이 잘못되었다며 서둘러 도어록을 다시 붙이고 작업을 중단했다.
기존에 아내와 했던 이야기는 도장과 필름이었다. 우선 현재 방화문상태 그대로에 도장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기에 우리의 의견은 필름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필름의 질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필름은 때가 잘 타지 않거나 타더라도 웬만한 때는 지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혹시나 잘못 찍히면 필름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 그런 보수에 대한 부분이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필름은 최후의 보루로 두고 도장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었다. 그러던 중에 락카로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났던 것이었고 그 호기로웠던 계획은 산산이 부서졌고 철저하게 실패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퇴근한 후 집에 들어간 나는 페인트의 종류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제품이 있었다.
"철재용 수성페인트"
이거다 싶은 마음으로 다음날 바로 페인트 가게로 찾아가서 구매를 했다. 또한 다○소에서 도장을 위한 스펀지세트도 구매를 했다. 현관문을 열고 또다시 도어록을 해체했다. 페인트 뚜껑을 열고 칠을 하려는데 또 한 번의 걱정이 나를 주저하게 했다. 아내에게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락카 위에 수성페인트가 묻을까?"
아내와 나는 그저 바라보고 서있었고 둘 다 생각은 같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망한 거 해보지 뭐!"
그렇게 첫 철재용 수성페인트를 찍었을 때 우린 얼굴에 밝은 미소가 지어졌다.
칠이 아주 잘 먹었던 것이다.
기세를 몰아 백색으로 바탕면 도장을 진행했다. 락카로 하면 백색으로 끝낼 생각이었지만 도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아내에게 어떤 색상을 하면 좋겠냐는 의견을 물었고 아내가 고심 끝에 색상을 골랐다.
먼저 백색으로 전체를 칠한 후 그 위에 메인 색상을 덮을 예정이다.
아내가 고른 색상은 '에그쉘'이라는 색상이었다. 공사 초기에 벽지도 천장도 가구도 싱크대도 모두 백색이라 약간의 불만 아닌 불만이 있었던 나는 어딘가 포인트를 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었다. 백색은 기본 색상인데 요즘 세상이 전부 흰색 검은색 회색으로 밖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푸념을 늘어둔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신발장의 타일도 그나마 무늬가 있는 테라조로 진행을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현관문을 리폼하면서 아내가 고른 색상에 아주 마음이 좋았다.
뭔가 우리만의 컬러가 잡혀간다는 것에 마음이 좋았나 보다. 물론 컬러를 많이 주면 금방 질릴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런 포인트 컬러가 들어갔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물론 아내도 생각했던 색상이라며 만족을 표했다.
도장은 총 3회 진행되었다. 그리고 페인트가 조금 남았는데 이건 혹시나 살다가 보수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 칠하자며 남겨뒀다. (사실 보수를 언제 할지도 모르고 할지 안 할지도 모르고 한다고 하면 다른 색상으로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남아있는 이 페인트를 사용하는 날이 올까도 미지수다.)
어찌 됐던 기존 락카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어 정말 다행스러웠고 원하던 색상도 나왔고 현관문이 밝아지니 현관의 분위기도 한층 밝아진 것 같아 마음이 정말 좋았다.
이제 현관문에 도어록도 교체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