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가 끝이 났다.
현관문 도장과 액세서리 재부착을 끝으로 '공사'타이틀을 가진 공정들이 모두 끝이 났다. 남은 건 이케아에서 구입한 옷장 조립과 자잘하게 손볼만한 그런 것들 뿐.
"내일은 청소를 하자"라는 말을 하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뭔가 기분이 묘했다. 드디어 끝났다 싶기도 하고 이제야 끝이 났구나 싶기도 한 그런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이 집에서 계속 일만 해서 그런지 여기서 우리가 함께 지내게 될 거라는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뭔가 끝이난 현장이라 다 챙겨서 철수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고로 청소는 위에서부터 내려와야 한다는 철학이 있는 나는 제일 먼저 천장 몰딩을 닦았고 창문의 유리로 조금씩 내려왔다. 그 후 걸레받이를 닦고 바닥의 먼지를 청소기로 빨아들였다. 이렇게 먼지만 제거하고 난 후 모든 잡다한 폐기물들이 나가고 나면 마침 아내의 본가에 스팀청소기가 있어 그걸로 바닥을 닦을 예정이다.
청소하면서 가장 기분 좋은 곳이 창틀이다. 창틀은 아직 오래 사용한 게 아니기에 때가 끼는 것이 아니라 먼지만 앉아있다. 그래서 청소기로 빨아들이면 밖에서 굴러다니는 걸 주워온 듯한 모습에서 새 제품으로 탈바꿈을 한다. 그 희열이란 정말... 감동이다.
나는 정리를 잘하는 편인데 아내는 청소를 잘하는 편이다. 우리는 이런 점이 서로 참 다르지만 서로 참 잘 맞다. 평소 허물을 벗듯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널브러져 있는 아내와 달리 나는 나름의 지정된 장소에서만 주로 무언가를 한다. 걸어 다니면서 바닥에 뭔가 놓여 있는 것에 대해서 과하게 이야기하면 살짝 불안하기도 하다. 지나가다가 걸려 넘어질 수도 있으며 미끄러진다거나 밟아서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청소의 주기가 짧지 않다. 평소에 정리를 하다 보니 깔끔해 보이고 깨끗해 보이긴 한다. 하지만 그것도 물티슈를 뽑은 김에 손을 잘 대지 않는 곳을 조금 닦는다거나 하는 게 전부다. 그와 달리 아내는 한번 마음먹고 청소를 한다고 하면 두 손 두 발 걷어올리고 열의에 가득 차서 '제대로'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린 서로가 대단하다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신기해하곤 한다.
그 덕에 우리의 업무분담은 나름 확실하다.
그래서 이번 입주청소에 물청소는 아내가 도맡아서 진행했다. 청소에 좋다는 제품들을 여기저기서 구매하여 거품을 내고 솔로 문지르고 와이퍼로 물까지 깔끔하게 쓸어냈다. 힘들어 보이긴 했지만 아내 스스로도 이번에 공사를 하면서 본인이 기술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마감에 접어들면서 열정 넘치게 덤벼들만한 일이 생겨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작은 일 하나하나에 기분 좋아하고 고마워할 줄 아는 아내에게 참 고마움을 느낀다.
줄눈을 닦아내면서 벽을 한 번 닦아낸 것 말고는 청소를 한 적 없는 욕실도 대대적인 거품청소를 진행했다. 사실 아내가 물청소를 한다고 했을 때 내 마음에 약간의 반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분명 언젠가 물을 사용해야 하고 밝혀지려면 언젠가는 밝혀지겠지만 혹시나 공사가 제대로 되지 못해서 청소를 하던 중 밑에 집에 물이 콸콸 흘러내리면 어쩌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가 물청소를 할 때에 나는 신경이 아주아주 곤두서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물청소는 깔끔하고 완벽하게 끝이 났다.
아내는 요리하는 것에 흥미가 있다. 내가 볼 때 웬만한 또래들보다 반찬이나 각종 요리들을 곧잘 해내는 것 같다. 나의 어머니는 결혼하실 때 라면도 끓일 줄 몰랐다고 하시는 걸 보면 해주는 음식만 먹고 자랐던 시기에는 요리에 대해서 능숙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내도 꾸준히 본가에서만 지내 왔는데 요리하는 데에 크게 어색함이 없는 걸 보니 확실히 흥미가 있다는 걸 느낀다. 베이킹도 요리에 포함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베이킹도 좋아해서 언젠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면 아내만을 위한 작업장(?) 같은 방을 하나 해주고 싶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는 우리가 공사를 하는 동안 시간이 간다는 걸 느끼게 해 준 게 하나 있다. 바로 베란다에서 보이는 아파트 신축 현장이다. 우리가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는 지하의 주차장을 짓고 있었는데 우리 공사가 끝날 때쯤에는 반 이상의 층수가 올라온 상태였다. 아내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베란다에서 먼지를 털어내며 문득문득 이런 이야기들을 했었다.
"어! 한 층 더 올라갔다!"
그런 한마디들이 우리에게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들은 참 많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말들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때를 돌아보면 참 다양한 감정이 생긴다. 우리가 살 집을 위해 일을 내려놓고 이렇게 덤벼드는 게 참 무모하다 싶었다. 또 반대로 이때 아니면 언제 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공사 중에 장모님과 장인어른께서 구경차 놀러 오셨던 적이 있었다. 점심을 함께하기 위해 아내와 대충 털어내고 입구로 내려갔는데 퍼티 샌딩을 하던 중 새하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딸의 모습을 보시고 충격을 받으셨던 장모님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가 볼 때 장모님은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그 정도인가...(나는 T인가...)'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힘들어 보인다는 이유뿐 아니라 장모님 스스로도 뭔가 업체를 불러줄 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었거나 혹은 조금 더 수월하게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방도가 있었더라면에 대한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도 있으셨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나 아내의 그런 넉넉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환경 덕분에 우리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뭔가 공사가 끝나고 마지막 글 같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