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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tine sk Mardres Aug 06. 2023

#11 20230806

에드먼턴, 캐나다

거실에서 나 포함 총 11명이 대충 여기저기 옹기종기 서서 일회용 포크, 종이 식판에 찬통 칸칸이 담은 차가운 피크닉 음식으로 가족 저녁 모임을 가졌다.


시어머니 여동생 아들 내외가 밴쿠버에 컨벤션 참석 차 워싱턴 D.C에서 직접 운전해서 오는데, 주요 캐나다 관광지를 거치는 중 외사촌들 만나겠다고 일부러 에드먼턴에 들른 것이다. 실버타운 비슷한 곳에서 거주하시는 터라 가족 모임을 가질 공간도 마땅치 않았고 그 많은 인원이 서너 시간 이상 떠들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식당도 없었기에 시어머니께선 시간 많은 나에게 모임 장소 제공과 애피타이저나 디저트 정도의 음식 준비를 부탁했다.  뭐 껀수없나 별일 안 생기나 목 쭉 빼고 대기 중인 나는 선뜻 산뜻하게 웃으며 수락했다.


괜히 수락했다. 시어머니의 문자 폭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문자 한건당 두 페이지 넘었다. 내 리딩 컴프리헨션 능력을 이런 데다 쓰고 싶지 않았던 나의 답변은 친절하게 싹퉁바가지 없이 짧아졌다. 걱정을 미리 사서 하는 시어머니는 내가 화났다고 생각하며 남편을 들쑤셨다. 가짜 게살과 아보카도 넣은 캘리포니아롤 정도는 해볼 만하다고 큰소리쳤다가 게살 분쟁이 시작되었다.


게살이 너무 이국적이라 못 먹는 사람,  김 싫어하는 사람, 처음 보는 음식 안 먹는 사람,  평소 먹는 음식 아니면 안 먹는 사람, 알레르기 있을 수도 있는 사람, 탄수화물 안 먹는 사람, 온갖 입 짧은 사람 생각해서 김밥, 초밥, 캘리포니아롤 이런 거 생각도 하지 말라는 요지의 기나긴 시어머니 문자에 단답형으로 답장하다가 읽은 후 무응답으로 응답한 나는 아무 거나 주는 대로 잘 먹는 아들과 딸이 갑자기 고마워졌다.


집 근처 공원에서 피크닉 겸 가족 모임을 하는 걸로 정하고 식어도 괜찮은 걸로 애피타이저는 내가 식사는 시어머니가 맡기로 했다. 시어머니의 정성스러운 장문의 문자를 읽으며 10인분 밥솥 버튼 눌러 놓고 나니 손녀와 데빌드에그 같이 만드시겠다고 두 시간 일찍 시어머니가 오셨고, 모임 시간보다 1시간 30분 정도 일찍 외사촌 커플이 도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폭우가 쏟아졌다.


외사촌 닉은 십여 년쯤 전에 부산에서 교환학생으로 한 달간 지냈었고 잠시 짬을 내 부산으로 놀러 간 우리 식구들과 부산 횟집에서 저녁을 같이 하고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시어머니 여동생은 우리 집 아이들 둘과 그때 그 포즈로 사진 한 장 찍어오라는 건들거리는 두 청소년들의 태도를 간과하는 엄청난 미션을 주셨고 당연히 실패했다.


비치발리볼 선수 출신인 신부가 햇볕을 많이 받아 피부가 노화되었구나 했는데 그냥 노화였다. 신랑보다 일곱 살 많은 그녀의 첫 임신을 축하하며 첫 아이 출산 하루 전까지 출근했고 진통이 시작되고선 면허가 없던 남편 대신 직접 운전해서 아이 낳으러 갔던 일화를 떠벌리며 트래킹이 취미고 전 날도 밴프에서  하이킹했다는 그녀를 칭찬했다. 내 자랑하며 남 칭찬하기 능력치가 향상된 걸 느끼며 밥 10인분은 내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피크닉은 엎어지고 옹기종기 서서 집 안에서 먹는 도시락이지만 푸짐하니 먹을 만했다.  시어머니가 가족을 일일이 소개하는 자리에서 나를 남편 형의 아내라고 실수를 하셨다. 그날 저녁 내내 남편 형과 작당을 하여 개그 캐 신혼부부 상황극을 했다.


장파티 끝.


저녁 다 먹고 나니 거짓말 처럼 해가 나와서 공원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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