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20230125

에드먼턴, 캐나다

by Martine sk Mardres

보통 박물관이나 미술관 또는 전시회에 가면 시설물 중에 '수리 중'이라던가 '고장', '교체공사 중' 뭐 이런 메시지가 걸려 있는 경우가 가끔 있다. 주로 버튼을 누르거나 직접 관람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전시물인 경우 자주 보게 되는 일상적인 표지판이니 별생각 없이 스쳐 지난 경우가 많다.


영어 공부한 지 30년 훨씬 지난 세월 동안 만 시간의 법칙을 거친 후 내 영어가 제법 어느 경지에 올라왔다고 자부하며 영어 강사노릇도 해 왔지만, 슬프게도 주의를 기울이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영어는 내 귀를 스쳐 지나갈 뿐이고 눈앞에 영어 간판도 작은 글씨로 되어 있거나 보려고 의도하지 않으면 머릿속에 콕 박히치는 않는다.


전시물에 버튼 같은 게 있어 눌러보니 아무 변화가 없다. 고개를 들고 정면을 보니 전시물의 일부인 줄 알았는데 뭔가 적혀 있다.


"I like to play, but I am not working today."


'놀고 싶지만 오늘 근무 안 해요!' (엥? 공룡뼈도 퇴근해?쉬는 날이야? 휴가간거야?)아이들은 이렇게 받아들일 것이고 어른들은 '가동하고 싶지만 오늘은 작동 안 해요'라고 생각할 것이다. 같은 메시지이지만 눈높이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는 것이다. 나는 그 메시지가 무척 귀여워 보였다. 그냥 '작동 안 함-Not available'정도로 해도 당연하게 생각할 것인데 누군가의 관심과 약간의 재치로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문구가 아이들도 쉽게 수긍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유머 있게 적혀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번역을 하다 보면 자꾸 유식해 보이려고 한자어를 더 많이 쓰고 치장을 하게 된다. 나의 얄팍한 지식을 감추려고 더 아는 척을 한다. 더 있어 보이려고 더 대단해 보이려고 몸집을 부풀린다. 고상해 보이는 단어를 찾아, 있어빌리티를 한껏 내뿜으려 한다. 돈 주는 자의 취향에 나를 맞춘다.


이제는 핏대 올려 열창하는 노래보다는 힘 빼고 편안하게, 듣는 사람도 편안해지는 음색에 더 끌린다. 힘주지 않고 힘 빼고 살살해도 내공이 느껴지는 그런 게 더 좋다. 요란하고 화려한 거 말고 소박하지만 나름의 비교 불가한 끌림을 주는 것들 말이다.


나답게, 나의 취향이 모여 내가 된다.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것, 나의 호불호가 취향을 만든다. 오늘도 나다운 게 뭘까 생각하면서 나를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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