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20230124

에드먼턴, 캐나다

by Martine sk Mardres

캐나다인 남편과 한국에서 20여 년을 살다가 캐나다로 이주 한지 이제 두 달 반 정도가 되어 간다. 한국에서 살 때는 시어머니가 캐나다인이라서 명절 스트레스 없겠다고 주변의 부러움을 받았었다. 구정을 하루 앞두고 캐나다인 시어머니께서 설날에 너네들 뭐 할 건데? (힌트 힌트) 내가 도와줄 건 없어?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다. 옆에서 통화내용을 듣고 있는 나를 흘깃흘깃 보면서 눈치 보는 남편의 표정이 복잡 미묘하다.


나한테 직접 전화 주셔서 눈치껏 뭔가를 해라 하는 무언의 압박을 한 것도 아니기에 그냥 입 싹 닫고 모른 척 우리 집 식구 네 명만 떡국 한 그릇씩 조촐하게 먹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주변지인들 밥 해 먹이는 걸 즐기는 편인지라 흔쾌히 남편에게 시어머니 초대하라고 하고 냉장고를 살피니 김치전, 파전, 팽이버섯 전+떡국 조합의 간소하지만 명절 분위기 살짝 나 보이는 식단이 나온다.


어차피 시어머니가 오신다. 시어머니 친구분이자 시어머니의 전 사돈어른인 할머니도 같이 초대하기로 한다. (이혼하고도 좋은 친구로 지내며 각자의 파트너를 대동해 같이 휴가도 가는 할리우드 배우들 얘기가 떠오른다.) 영국 출신인 그녀는 시어머니 보다 나이는 더 많지만 건강이 좋은 편이라 여기까지 걸어서 무리 없이 오실 수 있다고 하시니 좋은 이웃사촌이 될 듯하다. 한 때 뜨개질이 취미였지만 지금은 안 하신다고 집에 잔뜩 굴러다니던 뜨개질용 실뭉치를 둘째 딸에게 왕창 주셨기에 안 그래도 식사 대접 하려고 했으니 겸사겸사 잘 된 일이다.


떡국에 넣겠다고 소중히 기르던 쪽파를 잡아먹었다. 키워서 잡아먹는 기분이 이런 걸까. 키워서 잡아먹지 않고 쳐다보며 위안만 얻을 반려 식물 하나 들여놔야겠다. 마트에서 1+1으로 사 온 쪽파를 더 해서 개인 접시에 담기 좋도록 손바닥 반정도 크기로 전을 부치고 둘째 딸 같은 반 한국인 친구 엄마한테 선물로 받아 아끼고 있던 김치에 한국산 참치 한 캔 다 넣어서 김치전도 만들다 보니 온 집안 가득 채우는 전 부치는 고소한 냄새에 명절 분위기 나기 시작한다.


500그램짜리 떡국 한 봉지로 겁나게 먹성 좋은 아이들 두 명 포함 6명이 먹기엔 턱없이 모자랄 듯해서 만두도 같이 넣고 끓인다. 비장의 무기 소고기 다시다로 국물을 내고, 평소보다 화려하게 소고기, 두부, 계란, 김 고명을 4가지나 올리고 깨를 솔솔 뿌려 놓으니 꽤나 그럴듯하다.


캐나다 할머니 두 분과 같이 떡국을 곁들인 명절 상차림을 흥겹게 나누고 세배도 드리고 아이들은 용돈까지 받아 챙기니 타국에서 보내는 명절이지만 마음만은 풍요롭다.


한국인 며느리 거의 20년 차 내공 좀 발휘해 어깨도 좀 주물러 드리고, 유명 미국 배우가 등짝과 어깨에 페페로니 문신을 새긴 줄 알고 주변이 들썩거렸는데 알고 보니 부황 뜬 거였다고, 어깨 등 아픈 데는 부황이 최고라는데 들어는 봤냐며 주접도 떨고 캐나다 할머니들 웃느라 숨넘어가는 거 보니 흐뭇하다.


남은 음식 하나도 없으니 또 흐뭇하다. 손이 작아 음식을 일부러 적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딱 초대 인원에 적절하도록 준비해서 남기는 일 없도록 하는 편인데, 맛있게 먹고 과식하지 않고 음식 낭비 하지 않는 걸 좋아한다. 뭔가 딱 들어맞을 때 느끼는 행복감을 오늘도 잔뜩 느끼고 나니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는 하루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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