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20230129

에드먼턴, 캐나다

by Martine sk Mardres

냉장고에 애호박이 있다. 여기서 쥬키니를 사면 애호박과 거의 흡사하다. 된장찌개 맛있게 끓이는 게 한국에서 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1회분씩 포장되어 간단한 채소 두어 가지만 넣어도 그럴싸한 맛이 나던 대기업에서 출시된 된장찌개 양념장에 너무 의존하던 터라 나는 잊고 있었다. 시판 양념장 사용하지 않고선 된장찌개를 한 번도 제대로 끓여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막상 한인마트에서 1킬로나 되는 된장을 반갑다고 대책 없이 덜컥 사 와서는 한 달째 방치하던 차였다. 멸치 사서 육수를 내려니 귀찮다. 다시다 있으니 어떻게든 먹을 만하게 되겠지. 믿는 구석이 있다.


국물이 흥건해서 국인지 찌개인지 모호한 것 말고 밥 위에 얹어서 덮밥으로 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자 예전에 엄마가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국물 없는 강된장 많이 먹었다고 얘기해 준 게 생각났다.


인터넷 레시피 훑어본다. 오호라 애호박 많이 넣어서 물을 따로 넣지 않고 하는 저수분 요리라고 생각하면 되겠군.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온다.


언젠가 먹어 봤던 기억을 되살린다. 기억 속의 맛과 생김새를 떠올린다. 마늘 다져 참기름에 살짝 볶은 후 다진 소고기 익히고 요리용 맛술 넣어 누린내 잡아준 후 깍둑썰기한 애호박과 양파 투하. 채소가 살짝 익을 때쯤 된장 두 스푼 고추장 한 스푼 넣고 약한 불에 덖어 내다가 나의 구원 투수 다시다 반 스푼 넣어준다. 뚜껑을 닫고 채소의 수분만으로 국물이 자작 해질 때쯤 잘게 썬 팽이 버섯과 깍둑썰기한 두부 한모 다 넣고 애지중지 고이 기르던 파 쑹덩쑹덩 잘라 넣는다.


이쯤 되니 카레인지 마파두부인지 애매한 비주얼이다. 고추장 한 스푼 크게 넣은 탓에 애들 먹기에는 제법 칼칼하다. 갓 지은 쌀밥 위에 생애 처음 내 맘대로 만든 강된장 올리니 맛깔스러워 보인다. 계란도 노른자 탱글하니 기름 넉넉히 두르고 튀기듯 구워 내서 강된장 덮밥 위에 올리고선 검은깨 솔솔 뿌린다. 식당에서 파는 것 같다. 집밥 최고의 칭찬을 받는다. 식당에서 먹고선 맛있으면 집밥 같다고 한다지....?


커다란 냄비 그득하니 많이 만들었는데 바닥이 보인다. 아빠만큼 먹고선 더 먹겠다는 둘째 딸내미 말리고선 1인분 겨우 남겨 둔다. 혼자 점심 먹을 때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간단히 먹을 심산이다. 이래저래 내일 점심 고민까지 덜고 엄청난 크기의 된장통의 압박에서 벗어날 방도를 찾은 듯하여 회심의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굳이 된장찌개 아니어도 괜찮다고 처음 먹어 보는 내 맘대로 강된장, 열린 마음으로 맛있게 먹어 준 식구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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