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이라고 하기엔 좀 부끄러운 시간까지 늘어져 누워있다. 이대로 버티다가 아침을 건너 띄고 바로 점심을 먹자. 주중 내내 돌아서면 밥 차리기, 돌밥돌밥 해 왔던 터라 왠지 먼저 일어나면 지는 기분이 든다. 포기하지 말고 이불 밑에서 좀 만 더 버텨보자.
어젯밤 웬일로 나보다 먼저 잠든 남편이 백기를 들고일어난다.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고 뭔가 그럴듯하게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기름에 뭘 볶나 보다. 달짝지근한 냄새가 아닌 듯 하니 팬케이크는 아니고 그렇다면 스크램블 에그일 테지. 근데 익숙하긴 한데 딱 꼬집어 뭔지는 알 수 없는 냄새가 섞여 있다. 수상하게 고소한 냄새의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다. 궁금함을 못 견디고 배고픔을 핑계로 일어난다.
아하 해시브라운이었구먼. 그저께 냉동으로 된 감자패티 사더니만 오늘 먹게 되는구나. 집에 감자 한 보따리 있는데 저걸 뭐 또 사누 하고 속으로 끌끌 혀를 찼지만 뭐 본인이 먹고 싶었나 보다 하고 군소리 안 했었다. 하얀색 접시 위에 방울토마토, 둘째 딸내미가 그렇게 사달라고 졸랐던 싱거운 배 맛에 검은색 자잘한 깨가 박힌듯한 드래건프룻, 해시 브라운 그리고 푸짐하게 담긴 스크램블 에그가 식욕을 자극한다. 아이고 이런... 다 먹고 나니 사진 한 장 찍어서 남겨 둘걸 후회가 된다. 동네 사람들~ 남편이 아침상 차려 줬어요! 하고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 들자마자 거실 창 커튼사이로 맞은편 사는 그녀가 커다란 삽으로 눈을 치우는 게 보인다. 바로 현관문을 열고 큰소리로 헤이~눈 치우냐? 소리 지른다. 반갑게 뭐라 뭐라 하는데 마침 차가 슝 지나가버려 하나도 안 들린다. 답답했던지 바로 저벅저벅 큰 걸음으로 길을 건너 집 앞까지 다가와서는 남편 장화 신고 있지롱 하고 발을 번쩍 들어 보인다.
며칠 전에 스노부츠 샀다더니만 본인 부츠는 눈에 젖을 까봐 아끼는 중인가? 남편 대신 씩씩하게 눈 치우고 있으니 남편도 일조해야 한다고 남편 부츠 신고 나온 거라고 해두자. 눈 치우기 공조. 번쩍 한 발 들어 보이며 남편 부츠 보여 주기에 한 마디 했다. "Steal it! 훔쳐" 푸하하 웃기다고 뒤로 넘어간다.
이 집도 역시 "니 거도 내 거, 내 거도 내 거" 그런가 보다. 뭐 새삼스레 훔치기는 그냥 있으니 쓰는 거지. 그나저나 자랑하고 싶던 차에 잘됐다 싶어 나는 방금 일어났지롱(제일 큰 자랑이다), 남편이 만들어준 아침 먹고 나니 바로 오후구만 껄껄껄 했더니, 너 파자마 내 맘에 쏙 든다 하고 기분 좋게 대꾸해 준다. 이러니 내가 그녀를 안 좋아할 수가 있나. 앗 이거 돌려 까는 건가?라고 생각하기엔 나의 뇌는 너무나 눈치가 없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돌려 까는 화법을 내가 눈치챘다면 처음부터 친구 되지도 않았을 테니까. 내복도 안 입고 홑겹 파자마 차림으로 영하 16도 기온을 무시 한 채 수다 한 판 떨고 나니 오들오들 동태가 된다. 손가락이 오그라든다. 추워서 오그라든다. 춥지만 마음이 따스하다.
이따가 볼링 치러 같이 갈래 하고 문자가 날아온다. 아이고 볼링장 위치를 보니 저번에 시어머니가 데리고 가 준 5핀 볼링 말이군. 왕년의 볼링장 집 딸내미 숨겨진 고수의 능력치를 뽐내기엔 10핀이 아니고 5핀 볼링이라 많이 다르다. 오늘 나는 하나도 안 바쁘지만 운전대를 잡는 남편이 바쁘다. 내일 생일 파티에 초대된 딸아이 친구 선물도 사야 하고 이케아에 사이즈 잘 못 산 선반도 교환하러 가야 하고, 여전히 부족한 의자를 더 사야 하기에 볼링장 초대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