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열 때마다 4.5킬로그램의 거대한 어깨살 돼지고기를 째려본다. 그러길 일주일째가 넘은 오늘! 유통기한이 딱 오늘까지이다. 저번에 소금에 절여서 훈연한 어마무시하게 큰 사이즈의 생햄을 샀다가 중간에 뼈가 있는지 모르고 씩씩하게 칼로 소분하다가 손가락 날려 먹을 뻔한 적이 있어서 비슷한 사이즈의 돼지고기 덩어리가 은근히 부담스럽다.
가격 대비 엄청난 고기양에 혹해서 샀으니 시간 많은 내가 책임 지고 해결 해야겠다고 칼을 꺼내 드는 차, 칼 갈아 줄 테니 좀만 기다리라고 남편이 설득한다. 성격 급한 나를 위해 바로 칼 갈아 주면 좋으련만 온라인 수업 중 하필 시험을 보는 시간이라 끝날 때까지 기다리란다. 이해하지만 부엌 식탁에 떡하니 자리 잡은 고기 덩어리가 공기 중에 노출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신경이 너무나 쓰인다. 내가 칼 갈아서 할게 해도 그냥 두란다.
기다리느니 혼자 하겠다고 하다가 부부 싸움 난 게 어디 한 두 번인가. 나도 칼 갈 줄 알지만 그가 칼을 갈아 준다고 했으니 기다린다. 초조하다. 심히 초조하다. 급한 성격 탓에 못 기다려서 먼저 알아서 하다가 너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들으니 너무 속상하다고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씩씩 거리던 남편이 생각나서 한 번 더 심호흡을 하며 시선을 딴 데로 돌린다. 아예 방으로 들어가서 남이 쓴 글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칼 다 갈았다고 나오라고 하며 뿌듯하게 웃고 있다. 내 탓으로 시작될 부부싸움 미리 막은 나 토닥토닥 스스로 칭찬한다.
지방층이 이렇게 두꺼웠던가. 지방층을 분리하고 근육막을 제거하고 뼈를 피해 살을 발라낸다. 칼이 잘 드니 훨씬 더 수월하지만 여전히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나 같이 시간이 많고 돈은 많지 않은 사람이나 기꺼이 할 법한 노동이다. 한동안 덩어리 고기는 사지 않아야겠다. 칼을 계속 쥐고 힘주고 했더니 엄지 손가락이 얼얼하다.
돈까스 먹고 싶다 노래 부르던 아이들 떠올라 최대한 넓적하게 자르려고 해도 살짝 얼어 있는 고기가 아니라 잘 안 된다. 6조각 겨우 만들어 내고 칼등으로 더 평평하게 펴서 맛소금, 마늘 가루, 후추 뿌려 통에 소분하고, 나머지는 인정사정없이 베어 낸다. 카레용 고기 깍둑썰기해서 바로 냄비에 넣고 나머지는 풀드포크 할 거니까 압력솥에 넣고, 나름 얄팍하게 불고기 컷으로 잘라 생강, 마늘, 간장, 미림, 매실액, 참기름 넣어 재워둔다. 딱히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고기는 대충 잘라 얼리고 나니 팔뚝 만한 뼈만 남는다.
한 시간 넘게 낑낑 거리며 있자니, 중간에 몇 번이나 내가 해 줄까 하고 남편이 주방으로 고개를 들이민다. 내가 하는데 까지 해볼게 하다 보니 다 끝냈다. 푸줏간 주인장이 된 기분이다. 내가 싸이코 킬러 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남편한테 살벌한 농담을 하며 거들먹거린다.
덕분에 점심은 돼지고기 듬뿍 든 카레, 저녁은 경양식 돈까스를 했다. 풀드 포크는 내일 점심으로 남편과 아이들에게 줄 샌드위치로 쓸 생각이다. 돼지고기 간장불고기와 김치랑 볶아 둔 돼지고기는 볶음밥도 되고 김치찌개도 되도록 미리 준비해두어서 냉장고가 그득하고 돼지고기 활용 음식으로 일주일 식탁이 푸짐해질 꺼라 생각하니 나의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