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20230201

에드먼턴, 캐나다

by Martine sk Mardres

지하실에 냉장고가 하나 더 있다. 방, 거실과 부엌도 하나씩 더 있다. 아마 제2차 세계 대전 후 왕창 지어진 집 중의 하나 인 내가 현재 사는 이곳은 마치 타임슬립해서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6년 이전으로 회귀한 듯하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된 집인가 정부에 기록된 집 등록 정보를 검색해 봤더니 1953년에 정부 시스템에 포함된 걸로 나온다.


띠용... 이때 한국전쟁 전후 복구에 한참 힘쓸 때고 부산에는 전국 각지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판자촌도 형성되고 하던 시기 아닌가. 중간에 살짝살짝 DIY수준으로 집을 수리하고 레노베이션한 흔적은 보이지만 대체적인 분위기는 할머니가 사는 옛날 집 같다. 미국의 무역 재재로 1950년대 풍경 그대로 그 시절 자동차들이 아직도 굴러 다닌다는 쿠바에 가면 이런 부엌이 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내가 살 던 집 거실에도 걸려 있었던 듯한 누런 금빛 테두리 타원형 아날로그시계가 표면이 거울로 되어 있는 부엌 상부 장 위에 걸려 있고, 돌아가신 시할아버지 유품이었던 맥주잔과 시어머니께서 평생을 쓰시다가 주신 딸기 넝쿨이 그려진 양철 찻 주전자가 오래된 부엌과 기차게 잘 어울린다.


단층집이지만 지하실에 방, 화장실, 거실, 부엌이 하나씩 더 있다. 뒷마당으로 바로 이어지면서 들어가는 입구도 분리 가능한 거 보니, 아마 옛날 내가 유치원 생이던 어린 시절에 살 던 집처럼 집을 쪼개 세입자를 들여서 주거 비용을 낮추려고 했던 모양이다. 대학교 근처라 대학생들 여럿이서 집을 쪼개 살 기도 했을 테다.


한국에 있을 때 대부분 시절을 아파트에서 지낸 터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집은 아이들이 신나게 층간 소음 걱정 안 하고 아래위로 우당탕탕 왔다 갔다 해도 혹시나 다칠까 걱정이지 소음으로 인한 타인의 불편을 고려해 잔소리하는 일은 크게 줄었다. 시끄러운 거 질색인 터라 아이들이 싸우겠다고 시동 거는 투닥거림에는 목소리 볼륨 낮추라고 바로 한 소리 한다.


음악을 크게 틀고 새벽에 춤을 춰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단지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우지 않을 정도로만 좋아하는 만화 DVD를 새벽까지 보고 음악 듣다가 흥이 나서 춤을 추기도 한다. 바깥 기온 영하 10도 아래는 항시 있는 일이고 영하 20도 30도 이하로 떨어지기도 하니 실내에서도 당연히 춥다. 보일러 온도 올려 봐야 공기 난방인 탓에 더 건조하기만 하고 손 시리고 발 시린 건 그대로 일 테니 아예 난방 온도를 낮추었다. 제일 따뜻한 곳은 보일러에서 나오는 훈풍이 제일 빠르게 전달되는 지하실인 사실이 너무나 속이 쓰리다.


지하 거실에 책도 가져다 놓고 라디오도 가져다 놓고 했지만 막상 낮에는 잘 안 가게 된다. 역시 사람은 창문으로 바깥 풍경 보이고 자연광이 들어오는 실내 공간 정도는 누리고 살아야 된다. 저번 주에 텅 빈 지하 거실로 컴퓨터를 옮겼더니만 애들 두 명이 지상으로 올라올 생각을 안 한다. 컴퓨터 한 대로 내도록 싸워대서 중고 pc를 한 대 더 구하고 목수 꿈나무 남편이 협탁 두 개 위에 떨어진 문짝을 얹어 컴퓨터 책상을 만들었다. 낡은 집과 너무나 찰떡 같이 어울리는 초저렴 PC방이 생겼다.


왠지 대학생 여럿이서 룸메이트 구해서 북적거리며 살 았을 법한 집에서 살다 보니 내 마음도 대학생 때로 돌아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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