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굣길, 둘째 딸이 손을 쑥 내민다. 손바닥에는 엄지손톱 만한 해적 보물 상자가 있다. 이게 뭐냐고 열어 봐도 되냐고 하니 의뭉스럽게 미소 지으며 끄덕끄덕한다. 안에 뭐가 있긴 한데 도대체 감이 오지 않는다. 슬슬 짜증나 하는 게 말은 안 해도 표정에 보이는지 장난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 싶은가 보다. 입을 쩍 벌리고 어금니가 빠져서 휑하게 된 잇몸을 보여준다.
어금니가 쏙 들어가는 이리도 귀여운 이빨보관함이라니 진짜 이빨요정이 들고 다닐 법한 동화 같은 소품이다. 그 귀여운 이빨 보관함은 학교에 구비되어 있어서 학교에서 이 빠진 아이들이 이빨요정 쌈짓돈을 털어서 무사히 수금할 수 있도록 선생님들이 주신다고 한다. 아이들은 이가 빠지면 베개 아래 두고 잔다. 그다음 날 지폐 한 장과 함께 이 안 닦아서 더럽고 충치 생긴 건 수거 못 한다는 이빨요정의 협박 섞인 편지와 함께 이빨은 사라진다.
4학년이 되도록 진심으로 이빨요정을 믿는 건 아니겠지만 이빨요정이 준다는 그 지폐는 탐나기 마련이라 끝까지 믿는 척을 하며 이빨요정 운운하는 뻔뻔한 녀석을 등교시키고 나니 어제 베개 아래 지폐 한 장 안 둔 것이 생각난다. 당신네 나라 풍습은 당신이 알아서 지키든지 이러고 남편에게 맡겨둔다.
먹성이 좋은 둘째는 먹다가 이 빠진 게 대부분이다. 학교에서 점심 먹다가 이가 빠져 이빨 잃어버려서 수금의 기회를 놓쳤다고 안타까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빨요정과 이빨 물고 가는 까치 이야기가 공존하는 다문화 환경에서 자라온 아이들은 자기들에게 더 득이 되는 문화적 관습을 골라서 누린다.
스페인이나 프랑스였다면 생쥐가 와서 베개 아래 놓인 이빨을 가져가고 대신 장난감을 둘 테고 중국, 일본, 한국은 지붕 위로 던지는데 고층 아파트에 사는 애들은 이빨 던질 지붕 찾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겠다 싶다.
어렸을 때 이가 덜렁거리면 실로 칭칭 감아 그 끝을 방문 손잡이에 걸고 문을 벌컥 열어 이를 뺏던 기억이 난다. 어디선가 읽은 동화책의 내용이 덧입혀져 기억이 조작된 건인가. 그러고 나선 까치가 물어 가라고 지붕 위로 던졌는지는 확실히 생각이 안 난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제 영구치에 손상이 가거나 삐뚤빼뚤하게 새 이가 나서 교정기를 껴야 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