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턴, 캐나다
한국에서 3학년이다가 2022년 11월 말쯤에 입학 허가가 나서 4학년으로 편입한 둘째 딸 역시 먼저 와서 여름을 보낸 큰 아이만큼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는 듯 보인다. 여기에서도 키가 큰 편에 속하는 둘째 딸은 6학년 남자아이들 축구하는데 한 명 모자라다고 머릿수 채워달라고 부탁도 받아 같이 축구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하기도 하는 것 보니 잘 살아남을 듯하다.
학교 행사에 자원봉사도 하고 학부모 행사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다 보니 이제 운동장에서 눈만 마주쳐도 바로 수다가 시작되는 낯익은 얼굴도 보이기 시작한다. 2주 전쯤 둘째 아이가 처음으로 반 아이 생일에 초대를 받아 본인 용돈에 아빠의 찬조금을 합해 친구 선물도 사러 가고 한국의 키즈카페 격인 파티장소에 갈 생각에 아주 들떴었다.
생일파티 초대장을 보니 꼭 와줬으면 좋겠다는 메시지와 더불어 장소와 시간은 적혀 있다. 제일 중요한 부모님의 연락처가 없다. 참석 여부를 내일 까지 알려 달라는데 아이한테 직접 전하라고 하고, 둘째 딸에게 그 집 부모님 연락처를 꼭 알아오라고 부탁하였으나 역시나 예상대로 빈손으로 오신 둘째 딸 덕분에 불안감이 들었지만 뭐 어떻게든 파티 주최 측에서 알아서들 하시겠지 하던 차였다.
생일 파티를 하루 앞두고 생일 맞은 아이의 아빠로부터 스크롤을 한참 해도 끝나지 않는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아빠가 감기 기운으로 몸이 힘든 와중에 생일자의 언니까지 편도선염으로 아파서 응급실에 가는 길이라며 이 상태로는 온 가족이 다 돌아가며 아플듯해서 파티를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내 전화번호는 같이 자원봉사한 다른 학부모가 가지고 있어서 연락이 되었는데 나머지 한 명의 연락처가 없어 사방팔방 수소문 하는 중이라고 하는데, 내 이럴 줄 알았다 싶었다. 급한 대로 선생님 이메일로 연락해 도움을 청해 보라고 당황한 그 아이 아버지에게 조언하고 실망한 둘째를 달래려고 했으나 막상 둘째는 별로 마음 상해 보이진 않았다. 우리 가족이 이럴 때 항상 하는 말... It happens. 그럴 수 있지. 이런 식으로 별스럽지 않게 넘기는 조기교육 덕인지 둘째 딸도 덤덤하게 넘긴다.
그다음 날 친구한테 줄 선물을 꺼내서 갖고 놀고 있길래 혼을 냈더니 갖고 놀던 거 아니고 다른 상자에 옮겨서 재포장하던 중이라면서 억울해한다. 가족들이 서로 크리스마스 선물 줄 때 작은 건 일부러 큰 상자에 넣어 포장하거나 소리가 나는 장난감은 뜯어서 소리 나지 않게 재포장해서 포장지 안에 뭐가 들었는지 만져 보거나, 흔들어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도록 하던 습관이 있어서 모든 선물은 포장을 뜯어서 재포장해야 하는 건 줄 알았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둘째 딸에게 어처구니가 없다.
일단 박스를 뜯으면 상품가치가 훼손되는 것이고 가족 아닌 타인에게 새로 산 선물을 줄 때는 그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겹치는 경우를 대비해 교환, 환불받을 수 있도록 영수증을 보관하는 등 배려해야 할 것이 있다고 설명하고 두 번 다시 친구에게 줄 선물을 뜯어서 가지고 놀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당부한다.
지구별에 도착한 지 이제 10년이 안 되는 이 외계 종족을 옆에서 지켜보며 같이 생활하자니 울화통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도대체 운동장에서 뭘 하고 놀았을까... 눈 위가 물감으로 알록달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