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20230218

에드먼턴, 캐나다

by Martine sk Mardres

토요일 오후 하와이로 떠날 예정인 그녀, 문을 두드리며 냉장고 속 샐러드 채소와 요거트 몇 개 그리고 팔찌 목걸이를 손수 제작할 수 있는 DIY키트를 전해주고 갔다.


파자마 바람으로 아직 이불속에서 얼마 전 한국에서 직구한 전기장판의 온기를 즐기며 꼼지락 거리고 있던 나는 잠결에 멀리서 들린 억양으로 그녀임을 짐작했지만, 남편이 아침을 만들어 깨울 때까지 자고 있는다는 주말오전컨셉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이불속에서 버티기로 한다.


내 소중한 루틴을 지키려는 데는 제법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눈은 떴지만 아직 침대 밖으로 나오지는 않은 그 반쯤 몽롱한 상태를 너무 좋아한다.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일어나야 할 시간보다 한 10분 정도 일찍 깨서 그 순간을 일부러 만끽하기도 한다. 이 소중한 시간이 너무나 귀해서 반가운 이웃의 깜짝 방문에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가 호응하는 것보다 더 우선순위로 정하고 내 육체와 정신을 온전히 이 행위에 할당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귀찮았단 소리를 이리 정성스레 한다.


어제 점심은 그녀를 집으로 불러서 떡만둣국을 같이 먹었다. 집에서 온라인 수업중이던 남편도 끼워 주었다. 아침 일찍부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고 수영복이라도 구해보려고 간 중고장터에서 빈손으로 허탈하게 집에 온 그녀는 그냥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거나 현지에 가서 사던지 해야겠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몇 년 전 태국 여행에서 저렴하게 산 허리에 두르는 긴 치마 '쌀랑'중 내 피부톤에 딱히 어울리지는 않는 듯해 한 번도 쓰지 않은 검정에 가까운 진보라색 코끼리 무늬를 그녀에게 주었다. 다른 빨랫감과 같이 기계세탁, 건조는 절대 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남편이 태국 야시장표 진녹색 티셔츠가 어떻게 땀에 찌들어 본인 피부를 녹색으로 물들였는지 자세한 묘사를 곁들었다.


남편을 슈렉으로 만들었던 슈레기 같은 5천원짜리 티셔츠 같으니라고...아마 그것도 바가지 써서 산것일테지.


날씨가 너무 좋아 재킷 없이 미키마우스 맨투맨에 똥머리, 드러난 손목에는 동남아 야시장에서 산 듯한 실팔찌와 수제 제작한 듯한 잔구슬 팔찌를 겹쳐서 하고 있는 그녀에게 팔찌가 딱 내 스타일이네 나도 그런 거 비슷한 거 있는데 했더니 본인이 직접 만들었다고 같이 만들어 보자고 했는데 그 약속을 DIY키트를 가져다주면서 반쯤은 벌써 지킨 것이다.


뭐든지 다 자기 건 줄 아는 딸내미가 물어보지도 않고 거실 카펫 위에 액세서리 만들기 구슬을 온통 늘어놓고 열심히 구슬을 꿰고 있다. 다 먹은 요구르트 통에 색깔 별 크기별로 구분해서 담아 놓고 제법 본격적으로 제작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에, 말도 안 하고 가져가서 쓰냐고 한 소리 하려다가 혼자 조용히 잘 노는 게 어디냐며 같이 옆에 앉아서 구슬을 꿰고 있자니 눈이 너무 침침하다.


작은 구멍에 실을 꿰는 게 힘들다. 아마 비슷한 이유로 이걸 전해준 이웃도 팔찌 한 두 개만 만들고 구석에 처박아 둔 건 아닐까 지례짐작을 해본다. 작년 라식수술 이후로 멀리에 있는 것은 참 잘 보이는데 가까이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게 힘들다. 딸내미는 벌써 목걸이도 만들고 팔찌도 만들어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목걸이는 만 9세 나이에 너무나 적절하게 너무 과한데 팔찌는 꽤 디자인이 괜찮다. 이런 것도 자꾸 만들어 보고 해야 감각이 키워진다 싶어 팔찌 칭찬을 늘어놓았다. 으쓱한 미소가 꼬맹이 귀에 걸린다. 한참 후 보니 스스로 다 치워 놓았다. 흐뭇하다.


오후 4시쯤 그녀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는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이 앞으로 여정이 얼마나 다채로울지를 짐작하게 한다. 비행기가 많이 연착되어 밴쿠버에서 1박을 해야 된다고 한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이런 자세로 관조하는 태도 없이는 돈 쓰고 스트레스 받고 이 눔의 여행 다시는 하나 봐라 이렇게 되기 쉽다. 재미로 일부러 고생하러 가는 게 여행 아니던가. 그 고생 중 즐거우면 그 즐거움이 더 빛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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