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20230223

에드먼턴, 캐나다

by Martine sk Mardres

집안 곳곳에 남편 친구가 한 달 반 정도 머무르다 간 흔적이 있다. 어딘가에서 계속 나랑 남편이라면 딱히 사지 않을 법한 유기농 어쩌고... 이런 고급진 포장의 식료품들이 자꾸 나온다. 이럴 거면 어디에 뭐 있는지 말이나 제대로 해주고 갈 것이지, 쯧!


남편 친구는 작년 11월쯤 한국에서 살다가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친구 방문 겸 아픈 어머니 병문안 차 왔다가 그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예상 보다 한 달 더 우리 집 지하실에 머무르다 갔다.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형제자매가 없는 상황에 같이 마음으로 나마 의지할 가족이 없는 상태에서, 저장 강박증이 있던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던 집을 정리하는 일은 큰 스트레스였을 꺼라 짐작한다.


한국인은 밥심! 위로는 돈으로! 한국인도 아니고 돈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듯 하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일단 잘 먹였다. 따뜻한 밥 해서 우리 식구들 먹을 때 꼭 시간 맞춰 오라고 해서 저녁을 같이 하고, 시간을 맞추지 못하겠다 싶으면 늦게라도 따로 먹을 수 있도록 냉장고에 늘 바로 데워 먹을 수 있는 식사를 준비해 두었었다.


늦게 까지 안 자고 있다가 점심 무렵 일어난 그에게 갓 만든 커피를 권하고, 김자반을 올린 간장 계란 밥 레시피를 전수했으며 고추장을 잔뜩 넣은 양푼 비빔밥을 나누어 먹기도 했다.


아무거나 잘 먹고 먹성도 좋고 한때 과체중이었다가 20킬로 이상 감량한 전적이 있던 그는 건강한 밥상에 관심이 많았지만 막상 요리에는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아 해먹지도 않으면서 의욕이 생길 때마다 재료를 구입하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 게, 꼭 내가 다 읽지도 못하면서 자꾸 책을 사는 거랑 비슷한 심리인 듯하다. 일단 '소유'할때 까지 과정과 소유하고 있는 상태만으로도 흐뭇하니까! 그 심정 알지 알지.


오늘의 요리는 그가 두고 간 유기농 모둠 콩으로 만든 간장 콩조림과 콩이 잔뜩 들어간 칠리! 머리털 나고 처음 만들어 본 콩자반이 제법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식감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하룻밤 내내 물에 불리고 한 시간 이상 끓였는데도 서걱서걱하니 슬쩍 덜 익었나 싶을 정도이다. 도대체 콩은 얼마나 오래 삶아야 하는가!!!


칠리는 자주 해 본 터라 모두들 맛있다고 인정해 주었다. 다들 맛있다고 추켜 세워 주지만 막상 내 입맛에는 안 맞아, 나 혼자만 어제 만들어 둔 소고깃국을 재탕하며, 다 같이 행복한 저녁식탁에 둘러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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