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20230224

에드먼턴, 캐나다

by Martine sk Mardres

3주쯤 전에 대출한 책 'Crying in H mart- H마트에서 울다'를 드디어 완독 했다. 며칠 동안 잊고 있다가 도서관서 대여기간 만료 D-3 문자를 받고 하루 종일 책 읽기에 박차를 가한 끝에 다 읽고 반납하러 가는 길, 집 밖은 영하 25도를 찍고 나는 나 자신을 상대로 예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에 스스로 답을 구하기 위해 생체실험을 감행한다.


극한의 추위를 겪으며 살아가는 러시아 사람들처럼 실제 술을 마시는 게 진짜 추위를 견디는데 도움이 될까? 계속 몸을 움직이면 얼마나 덜 추울까? 내가 견디는 추위의 한계는 어느 정도일까? 비장한 마음으로 보드카 두 잔을 오렌지 주스와 섞어 마신 후 알딸딸해져서 온몸에 열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내복 두 겹, 양말 두 켤레, 털모자, 머플러, 스노부츠 그리고 내가 가진 외투 중 제일 두껍고 따뜻한 것으로 중무장하고 길을 나선다.


이렇게 눈으로 덮인 하얀 대낮에 낮술 한잔 거하게 걸치고 나서니 솔직히 덜 춥다. 아마 모든 감각이 둔해진 탓일까 피부로 느끼는 칼바람조차 무덤덤하다. 혹시 너무 무감각해져서 손끝에 동상이라도 걸릴까 주머니에 충전 빵빵하게 해 둔 손난로를 꼭 쥐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너무 추워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좋다. 이 텅 빈 호젓한 거리를 내가 독점하는 것 같다.


걷다 보니 골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경찰차 안에 경찰과 눈이 마주친다. 한국에서 하던 버릇처럼 차가 지나가고 나서 건너려고 일단정지하고 버틴다. 먼저 건너가라고 눈빛을 보내는 데 내가 주저하는 듯 하니 손으로 나를 가리키고 길을 건너라는 손짓을 크게 한다. "아 쫌 먼저 가라고!" 웃고 있지만 짜증 내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이 웃기는 대치상황을 끝내고자 눈인사 건네고 얼른 길을 건너자니 미약하게 남아 있던 알딸딸한 알코올 기운이 확 다 날아가버렸다. 아까워라...


도서관 무인반납함에 책을 반납하고 이까지 온 김에 빌려 갈 책 있나 또 안을 훑어보자니 너무 둘둘 말고 와서 그런가 실내가 무척 답답하다. 일일이 온몸을 감싼 머플러, 모자, 외투를 다 벗고 또다시 입으려니 귀찮아서 새로 책을 빌리는 일은 다음으로 미루고 이제 30분 정도면 학교 수업이 끝날 둘째를 데리러 학교로 간다. 거의 1시간 30분을 영하 25도 육박하는 추위에 걸어서 돌아다니다가 학교로 도착하니 나는 인간 눈사람이 되어 버렸다. 속눈썹에 송골송골 뭔가 맺혔다가 얼어 있고 머플러 바깥은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차를 가지고 온 같은 반 한국인 엄마가 나를 발견하고 어차피 H마트로 가는 길이니 우리 집 쪽으로 지나간다고 태워 주신다고 하는데, 하교 종이 쳐도 느릿느릿 꿈지럭 대며 눈 마주치는 선생님들과 다 한 두 마디씩 나누고 시간을 끌다가 제일 나중에 나오는 둘째 딸을 기다리고 있자니, 그분들까지 기다리게 해서 많이 미안했지만 덕분에 집으로 올 때는 편하게 왔다.


지글지글 삼겹살과 매콤하고 시큼한 김치찌개가 그리운 저녁이지만 피카츄 돈까스가 연상되는 맛의 치킨커틀렛으로 버거를 만들어 오븐에 데운 냉동 감자튀김과 함께 저녁을 해결하니 뭔가 좀 부족하다. 배가 너무 부른데 뭘 덜 먹은 느낌이다. H마트 갈 때가 다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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