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데 덮친 격, 설상가상 또 뭐가 있나... 여하튼 3월 1일은 새벽 4시까지 학교에 등교해 저녁 9시 30분 귀가를 목표로 왕복 8시간 정도 걸리는 록키산맥 재스퍼까지 학년 전체 스키여행을 가는 큰 아이와 정상 등교 해서 제일 근방에 있는 가까운 스키장으로 학년 전체 스키 여행을 가는 둘째, 그리고 하필이면 같은 날 남편이 이력서와 추천서를 준비해 참석해야 하는 대학 연계 잡페어까지 세명의 엇갈린 스케줄을 앞두고, 스키장의 살인적인 물가를 대비하는 든든한 도시락 준비라는 미션을 위해 나는 잠을 포기했다.
새벽 4시까지 학교 도착하려면 아무리 늦더라도 집에서 3시 30분에는 차의 시동을 켜서 예열을 해야 하고 도시락 준비는 아무리 늦어도 2시 45분 전에는 해야 하니 그냥 그 시간까지 혼자 놀다가 도시락 준비를 하기로 했다. 다들 잠들고 조용한 한 밤중, 나에겐 아무도 없는 거실과 맥주 그리고 베개만 한 새우깡이 있다.
처음 네 시간은 너무 좋았다. 밤에 혼자 노는 걸 제일 좋아하는 파워집순이인 나, 알딸딸한 채 혼자 요가한답시고 요가 매트 위에서 이리저리 스트레칭도 하고 한동안 등한시했던 한국 뉴스도 보고, 눈을 감고 목소리 좋고 발성 좋은 배우 톰 히들스톤이 읽어 주는 소설책 오디오북으로 고막 호강도 시켜 주고 딱딱하고 차가운 마룻바닥이 푹신하고 따뜻하게 느껴질 때쯤 시간을 보니 이제 겨우 새벽 1시가 넘었다.
집에 요가 매트가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요가 매트를 처음 써 보는데 푹신하니 쿠션감이 느껴져 느낌이 좋다. 펼치는 건 쉬웠는데 예쁘게 돌돌 말아 전용 끈으로 고정해서 정리하는 건 맨 정신이 아니고서야 은근히 까다로웠다. 왜 예쁘게 원래 대로 안 돌아가냐고!!! 큼큼...
혼자 놀기의 달인이라고 그동안 착각을 했었나 보다. 혼자 놀아서 재미있는 건 딱 4시간 정도로 유효시간이 있었던 건데 이제껏 4시간 이상 연달아 혼자 놀 정도의 여유를 못 부리고 살았던 것이다.
새벽 1시 반이 넘어가자 슬슬 지겨워지고 좀 눕고 싶다. 알딸딸한 게 날아가니 이제 하품이 슬슬 나온다. 미리 도시락을 싸 놓고 자러 가자니 새벽에 나가는 큰 아이 잘 갔다 오라고 인사도 하고 싶고 한데 눈꺼풀이 슬슬 무겁다. 시계를 쳐다보고 있으니 시간은 더 안 간다.
미리 준비라도 하자 싶어 부엌으로 갔다. 스팸 무수비 같은 걸 하려고 했는데 전용 플라스틱 틀이 안 보인다. 가끔 기억조작이랄까 집에 있는지 착각하고 온 집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는 것들이 있다. 한국에 있을 때 가지고 있던 살림살이를 여기서 찾으면 당연히 없는데 자꾸 착각을 한다. 며칠 전에는 스테이플러를 그렇게 찾아다녔다. 밥주걱도 없고 고기 집게 같은 것도 없다. 내 기억 속에만 두 번째 서랍 뒤쪽에 있는 것이다.
무수비 패스. 삼각김밥 틀과 전용 김 세트 발견. 삼각김밥으로 목표 재 설정. 유통기한 한 달 넘은 푹익은 신김치 감지덕지! 베이컨 세줄 확보. 살짝 상태 안 좋은 깐 마늘 지퍼락 가득.
베이컨 김치볶음을 넣은 삼각김밥 제조 완료!
드디어 미션을 끝내고 나니 부스럭거리며 남편이 일어났다. 따뜻하게 예열해 놓은 전기장판 위로 허리를 펴고 누우니 여기가 천국이구나 그렇게 꿈에 그리던 찜질방이 지금은 하나도 안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