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20230117

에드먼턴, 캐나다

by Martine sk Mardres

이웃을 초대하기 바로 전에 장을 본 터라 집에 먹을 것이 넘쳐난다. 냉장고에 신선한 식재료가 가득하니 냉장고 문 열 때마다 흐뭇하다.


초등학교 꼬맹이 시절 집에 혼자 있을 때 자주 그리던 그림이 떠오른다. 개미와 배짱이 동화를 읽고선 그 동화의 내용보다는 겨울에 쌀가마니를 천정까지 그득하니 채워 넣고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차를 마시는 개미가족과 문밖에서 떨고 있는 베짱이를 그려놓은 삽화가 어린 마음에 어찌나 강렬했던지 몇 번이고 스케치북에 옮겨 그리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나는 주인공인 개미네와 베짱이는 빼고 뭘 잔뜩 쟁여놓은 개미집 내부만 엄청 그려 댔다.

지금 생각하니 여름 내내 베짱이는 바이올린 연습을 열심히 한 거였는데 왜 그리 동화책에서는 야박하게 몰아세웠나 싶다. 베짱이는 여름 내내 갈고닦은 바이올린 연주로 즐거움을 선사하고 개미가족은 맛있는 음식으로 화답하고 얼마나 이상적인가. 예술가를 칭송하고 아끼는 사회 분위기는 거저 생기는 게 아니다. 돈 잘 버는 것만이 사회적 성공의 척도와 개인의 목표가 되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다.


부족함 없이 키우려고 노력하셨던 부모님이 있었지만 뭐든 풍족하게 보낸 어린 시절은 아니었으니 식재료와 생필품으로 채워 놓은 부엌을 보면 마음이 든든하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마음도 넉넉해진다.


20LB 면 대충 10킬로쯤 되나? 감자 한 보따리가 9달러. 한 8500원 정도 될 듯하다. 뭐든 한국돈으로 얼마쯤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언제쯤 안 하게 될까? 맛 좋은 감자를 잔뜩 쟁여놨으니 싹 나기 전에 부지런히 먹어야지 하며 저녁 메뉴로 버터에 깍둑썰기 한 감자를 볶고 소시지 5개를 프라이팬에 굽는다.


얼마 전 남편이 사 온 소시지는 남편이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에 육가공 전공 학생들이 실습으로 만들어서 시중보다 싼 값에 파는 거라고 한다. 직경 3센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어마무시한 사이즈의 수제 소시지는 약한 불에 천천히 익히고 중간에 탈까 봐 물도 부어주고 해서 한참을 익히고 샐러드도 만들어, 익힌 감자와 정성스레 접시에 담으니 꽤 그럴듯해 보였는지 아이들도 식당 온 것 같다며 칭찬일색이다. 아이들이 접시에 포크 긁히는 소리 안 내려고 노력하며 테이블매너까지 스스로 지키는 모습이 귀엽다.


쩝쩝 후루룩 거리는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먹고, 먹을 때 식기 부딪치는 소리를 안 내려고 조심하고, 다 먹은 접시는 싱크대에 각자 가져다주고 누군가 대신 치워 주면 꼭 감사 인사를 하는 습관을 들이고 상대방 빈 그릇 일어선 김에 같이 치우겠다면, 치워도 되냐고 묻고 사소하지만 당연하게 지키는 식탁예절을 몸에 익혀 가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해한다.

돈 많이 쓰지 않아도 맛있는 거 해 먹고 서로 다정한 말 건네면서 건강하게 지내는 게 가족이 서로 같이 누리는 평화로운 일상의 행복이니 '오늘도 무사히' 지나감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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