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서 열흘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앞집 그녀, 우리 집 식구 전부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2월 18일 오전에 냉장고 속 요거트와 시금치를 전해준 이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오랜만이라 무척 반가웠다.
준비하는 재미와 기대감으로 두근거리기도 하지만 여행의 백미는 역시 고생담 수집에 있지 않겠는가. 고생담이 과격하면 할수록, 짠하면 짠할수록 이야깃거리는 더욱더 풍성해진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부부, 손수 준비한 정성 넘치는 저녁식사와 곁들인 와인에 듣는 사람도 즐겁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즐겁다.
여행의 고생담은 여행이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에 비행기 연착으로 밴쿠버 공항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1박을 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아마 아이를 대동하고 가지 않았거나 결혼 10주년 기념일이라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공항 근처 호텔은 꿈도 꾸지 않고 그냥 공항에서 노숙하지 않았을까 말하는 그녀, 참 털털하다.
아이 둘을 데리고 문 열린 상점 하나 없는 경유지 공항에서 그 나라 돈도 한 푼 없이 밤새도록 있어 본 적도 있었기에 아마 나랑 남편이라면 당연히 공항에서 그냥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드디어 도착한 하와이, 항공사의 실수로 그녀의 짐가방이 사라졌다. 일주일 후 항공사는 그녀의 짐가방을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서 찾았고 캐나다로 보내준다고 한다. 언제 받아 볼지는 알 수 없다.
갈아입을 속옷, 편한 신발, 화장품 등등 개인 소지품 하나 없이 남편 속옷 빌려 입고 본인 속옷 사러 사방팔방 헤매고 다니느라 하루를 쓰고 그다음 날부터 이틀간은 비가 주룩주룩 하루종일 오고, 아들은 갑자기 열나고 아프고 이런 총체적 난국 속에 휴가 절반을 날려 먹었다고 구시렁거리는 그녀 나머지 휴가 절반에 대한 이야기는 '안알랴줌' 모드로 말 끝을 흐리는 걸 보니 부러워할까 봐 민망했나 보다. 좋았나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