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20230307

에드먼턴, 캐나다

by Martine sk Mardres

드디어 장을 봐서 집안 곳곳 비상식량을 쟁여 두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기쁠 일인가...


이번에 드디어 내 한계를 시험하게 되는구나. 한정된 식재료로 최대한 오래 평균적인 인간성을 유지하며 네 식구가 남들이 봐서 우리 집 식구들의 정신세계와 정서적 아동학대의 가능성까지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점심 도시락처럼은 보이지 않는, 정상적인 범주의 도시락을 싸가며 삼시 세 끼와 간식의 욕구까지 달랠 수 있을까?


한동안 좀비물과 세기적 종말에 관한 영화나 소설에 심취해 있었다 보니 '~에서 살아남기'같은 생존준비에 나름 관심이 있었다.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널리 인기 있었던 '정글에서 살아남기' 등등 의 교육 만화도 있어서 아이들이 즐겨 봤었다.


이거 좀 땡기는데... 심장이 더 뛰는데...해 볼 만한데...재밌겠는데...라고 생각하며 오늘 저녁은 뭐 해 먹지 고민하던 중 남편이 식료품 쇼핑에 나선다고 따로 더 필요한 거 없냐고 묻는 소리에 기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그동안 없어서 아쉬울 때마다 작은 모눈 수첩에 쇼핑리스트를 적다 보니 리스트 길이가 한 장 가득이다. 정말 없으니 환장하겠는 것들에는 동그라미를 쳐 주고, 나머지는 가격이나 품질등을 따져서 가서 직접 보고 구매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라고 하고 수첩을 건네어줬다.


계산대 바로 뒤에 딸랑 과자 1 봉지 안고 서 있던 사람은 하필 남편이 같이 수업을 듣는 같은 반 학생이었다고 한다. 혼자 사는 싱글남을 경악하게 했던 220달러를 초과한 식료품 구입 영수증 길이가 참 후덜덜하다. 이런 게 캐나다 싱글남 유머인가... 그는 손에 든 감자칩을 높이 들고 남편에게 이렇게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게 저녁이야!'


서로가 상대방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며 집으로 가지 않았을까 속으로 상상해 본다.







계란을 빼먹었는데 남편이 기특하게도 알아서 2판. 60개를 사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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