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30분 넘도록 남편은 도면 그리기 과제를 붙잡고 있었다. 제일 하기 싫고 제일 못 하는 거라 미루고 미루다가 제출 마감일 몇 시간 앞두고 드디어 끝낸 후 혹시나 집에 두고 갈까 봐 길쭉한 실린더 통에 과제를 고이 담아 출석 수업 시 반드시 신어야 감점당하지 않는 안전화 부츠 안에 세워 두곤 잠이 들었다.
에스프레소 4샷을 넣은 미친 커피 1리터를 보온병에 담고 어제 먹고 남은 피자와 피넛버터 쿠키를 도시락으로 싸서 학교 늦지 않게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에서 나선 남편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도면을 두고 내렸음을 알아차렸으나 버스는 이미 떠났고 없다.
에드먼턴 교통공단에 전화를 하고 분실물센터에 문의했지만 24시간 이후라야 가능하다는 대답만 듣고 좌절하던 중 고유 번호가 붙어 있는 버스정류장과 그 버스가 통과한 시간대를 토대로 도면을 두고 내린 버스가 종점을 돌아 맞은편 정류장에 45분쯤 후 다시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하 20도 야외 버스 정류장에서 오매불망 그 버스가 다시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사정을 설명한 후 버스를 수색했다.
앉았던 자리에 도면이 보이지 않아 낙담했던 남편은 차 버스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도면을 담은 통의 생김새를 설명하고 혹시 주변에 있냐고 간절하게 묻고 나니, 좌석 뒤로 굴러가서 쳐 박힌 도면 통은 구석 시야가 잘 닫지 않는 자리에서 찾을 수 있었다. 도면을 찾는 동안 기다려준 버스기사와 안타까워하는 친절한 승객들의 도움으로 남편은 1시간쯤 늦었지만 다행히 마지막 도면 과제를 무사히 제출했다.
발등에 불 떨어지고 절박한 어른들이라고 농땡이를 피우지 않는 건 아니다. 자기 돈 내고 꼭 필요해서 다니는 학교라도 과제를 버스에 두고 내렸다고 미제출, 과제 늦게 내거나 아예 안 내고, 시험 점수 엉망이고, 수업 시간 떠들고 잡담하고 엉뚱한 소리 하고 애나 어른이나 똑같다. 남편이 과제 제출할 때 실제로 버스에 두고 내려서 과제를 제출 못 한다는 사람이 있었다는데 그 버스 추적해서 과제를 사수한 남편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마흔셋의 나이에 착실하게 학교 다니면서, 본인은 소수점 세 자리까지 쓰라는 수학시험 문제에 실수로 소수점 네 자리까지 써서 좀 더 정확한 답을 쓰는 바람에 1개 틀려 시험점수 95점 맞았다고 이리 쉬운 데 반평균이 왜 60 몇 점이지 하고 굉장히 얄밉게 잘난척하는 남편의 머리를 아이고 잘했어요 하고 쓱쓱 쓰다듬어 주니 남편이 빙구 웃음을 지으며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