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20230317

에드먼턴, 캐나다

by Martine sk Mardres

커뮤니티 리그라고 동네 반상회 같은 조직이 있다. 조직이라고 하니 어감이 이상하다. 어쨌든 조직은 조직이다. 일정 회비를 내면 커뮤니티 리그에서 관할하는 스케이트 장이라던가 하는 시설을 무료 또는 실비로 사용할 수 있기에 남편이 회비를 내고 미리 가입을 해 놓은 상태였다.


St. Patrick's Day를 기념하는 행사를 주최하는 커뮤니티 리그 행사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앞집 그녀의 활약으로 불금의 부부동반 "동네잔치"에 끼어 보기로 했다. 이제 어엿한 중학생이 된 큰 아이가 앞으로 용돈벌이에 큰 부분을 담당할 베이비 시터 정식 데뷔를 앞두고 체험판으로 앞집 아이와 여동생을 동시에 떠맡았다.


어른들끼리만 놀러 간다고 이게 얼마만이냐 아침부터 기대만발인 상태로 들떠서 무슨 옷을 입을까 얼굴에 화장이라도 좀 할까 입꼬리가 씰룩씰룩 절로 올라간다. 초록색 모자를 쓰고 초록색이 들어간 옷을 입고 녹색 식용색소 한 방울 떨어뜨린 맥주를 마시고 녹색 토끼풀 모양 장식을 여기저기 걸어놓고 밤이 늦도록 맥주를 진탕 마시고 보드게임도 하며 동네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는 게 행사의 취지이다.


다들 녹색이 들어간 옷을 입는데 나한테 녹색 옷이 없을 거라 짐작한 앞집 그녀 본인 옷 중에 녹색 계열 옷을 다 꺼내 놓고 마음에 드는 걸 고르라고 한다. 사실 내가 입으려고 했던 것은 나무꾼룩, 빨간색과 검은색 체크무늬 셔츠였는데 빌려 준 다는 성의를 무시하기 그래서 짙은 녹색 스웨터 하나를 고르고 드레스코드를 꼭 맞춰야 하는 분위기이다 싶을 때 위에 걸치겠다고 솔직히 얘기한 후 가방에 넣어 가기로 했다.


아이들만 남겨놓고 마음이 쓰인 것도 잠시, 행사장에 도착해 맥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마자 할머니들한테 꼬집혔다. 술이 살짝 들어가 기운도 좋은 할머니들 손아귀 힘도 좋게 내 팔뚝을 꼬집는다. 성 패트릭 데이에 녹색이 몸에 없으면 꼬집는 풍습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꼬집힘 예방 용 녹색 스웨터로 갈아입고 나서 유쾌한 할머니들과 취중 보드게임을 시작했다.


이 할머니들 강적이다. 60년 이상을 술을 마신 베테랑 술꾼들이었던 것이다. 호기심도 많고 웃음도 많고 농담도 잘하시고 질문도 많다. 혈관에 도는 알코올을 빌미로 혈색도 좋고 활력도 넘친다. 그중 영국에서 태어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청춘을 보내고 캐나다로 와서 산지 30여 년이 되어 간다는 할머니는 왕년에 미모로 주름잡았음이 주름 사이에서도 보인다. 가슴골이 보일 만큼 푹 파인 옷에 입술은 빨갛게 칠하고 큼지막한 목걸이 귀걸이 팔찌 주렁주렁 다 걸쳐서 노년의 파멜라 엔더슨 닮은꼴로 어디 불려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와중에 염색은 안 하셔서 컬이 잔뜩 들어간 은발의 머리가 멋스럽다.


8시가 넘어가자 사람들이 더 모여서 행사장이 더 들썩거리고 활기가 넘친다. 몇몇은 눈에 익다. 둘째가 다니는 학교에서 마주치기도 했던 학부모들도 섞여 있다. 눈인사만 하고 대화는 안 나눠 본 사람들과 맥주를 손에 들고 아이들 다니는 학교 얘기, 애들 키우는 얘기, 동네 얘기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목수 꿈나무 남편은 건축일 하는 동종업계 이웃들의 명함도 받고 전화번호도 교환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공고히 한다.


더 놀고 싶은데 벌써 시간이 10시가 다 되어 간다. 서둘러 집으로 걸어가는 와중에 애들이 응급 상황 터지면 연기 신호 보내겠다고 농담한 게 기억나서 소방차 출동한 것 없으니 무사한 가 보다 킬킬 웃으며 도착하니 눈 밑이 퀭해진 큰 아이를 필두로 거실 바닥에 쫙 펼쳐진 몬스터카드가 보인다. 베이비시터로 고용된 책임감 넘치는 장남이 세 시간 넘게 수고를 많이 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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