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산더미처럼 대출한 만화책 중에 기한 연장하지 않는 것들을 골라 반납하러 가는 길, 모처럼 남편이 동행했다. 일요일 오후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아이들은 지하실 컴퓨터 앞에만 징글징글하게 들러붙어 있다.
억지로 개 산책하듯이 데리고 나오려다가 입이 닷발 나온 애들이 내도록 투닥투닥거리면 서로 마음만 더 상할 것 같아 오붓하게 둘이서만 산책하기로 한다. 모처럼 햇살도 좋고 영상 5도까지 올라간 기온에 봄기운이 살짝 서려있으나 내일 오전 영하 10도라 하니 섣부른 기대는 말자.
햇볕이 내려앉아 질척 질척 진흙탕이 된 길거리 여기저기 물웅덩이는 미끄덩거리는 얼음판과 뒤섞여 있다. 일정한 규칙을 읽을 수 없는 무작위 장애물 코스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강한 햇볕에 눈이 시려 제대로 뜰 수가 없고, 눈물도 주르륵 흐르는 와중에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좀비처럼 발 끝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강한 산성을 띈 물질이라 닿으면 내 발바닥이 치지직 녹아내릴 거라고 엉뚱한 상상을 하며 구정물이 신발과 옷에 튀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린다.
잔뜩 긴장하고 길거리를 걷다 보니 혈당이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이 눈부신 햇볕에 둘러 쌓여 있는데 눈앞에 타르트 가게 위에 무대조명 하나가 더 켜 진 듯 두 눈을 꽉 채운다. 홀린 듯 들어가서 눈으로 즐기고, 가격을 보곤 어이 없어졌으나 이런 거 두세 개는 거뜬히 혼자 먹어 버릴 애들이 옆에 없다는 생각에 딱 두 개만 사서 먹어 보기로 했다.
평소에도 좋아하는 피스타치오가 부스러기로라도 올라가 있고 가격을 보면 당연히 피스타치오가 실제로 어느 정도 들어가 있을 거처럼 보이는 차분하게 톤다운 된 암녹색의 크림이 올라가 있는 타르트는 남편이 먼저 골랐지만 나도 먹고 싶어 하니 본인은 다른 걸 고른다. 길거리에 서서 남편 먼저 맛보라고 입에 넣어 준다. 서로에게 타르트를 먹여 주며 길바닥에서 염병첨병 꼴값을 떤다.
오는 길에 집 앞마당에 토끼를 풀어놓고 키우는 집이 보인다. "토끼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문구와 함께 왜 먹이를 주면 안 되는지 이유까지 친절히 써붙여 놨다. 오지랖 떨며 이래저래 입 떼는 오지라퍼 방지를 위해 3년째 이렇게 야외에서 키우고 있고 여기서 못 봤던 이유는 뒷마당에서 키웠기 때문이었고 토끼집 안과 물통에는 열선이 깔려져 있고 Timothy Hay상표의 신선한 건초를 준다고 구구절절 담장에 써붙여 놓은 걸 보고 얼마나 일일이 대답하느라 시달렸으면 이렇게 붙여 놨을까 웃음이 났다.
한 명은 학생, 한 명은 여행객. 현재 둘 다 백수. 십 대 남매 2명 양육 중!
부모님과 우리 형편을 아는 주변인들은 고구마 3개 앉은자리에서 먹은 듯 속이 답답하다 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