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20230319

에드먼턴, 캐나다

by Martine sk Mardres

아이들이 산더미처럼 대출한 만화책 중에 기한 연장하지 않는 것들을 골라 반납하러 가는 길, 모처럼 남편이 동행했다. 일요일 오후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아이들은 지하실 컴퓨터 앞에만 징글징글하게 들러붙어 있다.


억지로 개 산책하듯이 데리고 나오려다가 입이 닷발 나온 애들이 내도록 투닥투닥거리면 서로 마음만 더 상할 것 같아 오붓하게 둘이서만 산책하기로 한다. 모처럼 햇살도 좋고 영상 5도까지 올라간 기온에 봄기운이 살짝 서려있으나 내일 오전 영하 10도라 하니 섣부른 기대는 말자.


햇볕이 내려앉아 질척 질척 진흙탕이 된 길거리 여기저기 물웅덩이는 미끄덩거리는 얼음판과 뒤섞여 있다. 일정한 규칙을 읽을 수 없는 무작위 장애물 코스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강한 햇볕에 눈이 시려 제대로 뜰 수가 없고, 눈물도 주르륵 흐르는 와중에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좀비처럼 발 끝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강한 산성을 띈 물질이라 닿으면 내 발바닥이 치지직 녹아내릴 거라고 엉뚱한 상상을 하며 구정물이 신발과 옷에 튀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린다.


잔뜩 긴장하고 길거리를 걷다 보니 혈당이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이 눈부신 햇볕에 둘러 쌓여 있는데 눈앞에 타르트 가게 위에 무대조명 하나가 더 켜 진 듯 두 눈을 꽉 채운다. 홀린 듯 들어가서 눈으로 즐기고, 가격을 보곤 어이 없어졌으나 이런 거 두세 개는 거뜬히 혼자 먹어 버릴 애들이 옆에 없다는 생각에 딱 두 개만 사서 먹어 보기로 했다.


평소에도 좋아하는 피스타치오가 부스러기로라도 올라가 있고 가격을 보면 당연히 피스타치오가 실제로 어느 정도 들어가 있을 거처럼 보이는 차분하게 톤다운 된 암녹색의 크림이 올라가 있는 타르트는 남편이 먼저 골랐지만 나도 먹고 싶어 하니 본인은 다른 걸 고른다. 길거리에 서서 남편 먼저 맛보라고 입에 넣어 준다. 서로에게 타르트를 먹여 주며 길바닥에서 염병첨병 꼴값을 떤다.


오는 길에 집 앞마당에 토끼를 풀어놓고 키우는 집이 보인다. "토끼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문구와 함께 왜 먹이를 주면 안 되는지 이유까지 친절히 써붙여 놨다. 오지랖 떨며 이래저래 입 떼는 오지라퍼 방지를 위해 3년째 이렇게 야외에서 키우고 있고 여기서 못 봤던 이유는 뒷마당에서 키웠기 때문이었고 토끼집 안과 물통에는 열선이 깔려져 있고 Timothy Hay상표의 신선한 건초를 준다고 구구절절 담장에 써붙여 놓은 걸 보고 얼마나 일일이 대답하느라 시달렸으면 이렇게 붙여 놨을까 웃음이 났다.


한 명은 학생, 한 명은 여행객. 현재 둘 다 백수. 십 대 남매 2명 양육 중!

부모님과 우리 형편을 아는 주변인들은 고구마 3개 앉은자리에서 먹은 듯 속이 답답하다 할 수도 있겠다.

구황작물 좋아하는 나는 군고구마로 만들어 앉은자리에서 3개 먹으면 기분 째지겠는데?

오늘 참 마음 편하게 잘 보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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