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20230401

에드먼턴, 캐나다

by Martine sk Mardres

부활절 연휴는 다음 주말이지만 부활절을 핑계로 한 가족모임은 오늘이라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의 첫째 형님 댁으로 갔다. 한국에서는 내가 장녀였고 사람들 밥 해 먹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내가 모임을 주도하는 편이었는데 4형제 중 막내로 자란 남편 덕에 캐나다 오고부터는 집안 행사 및 각종 모임에 내가 선두지휘하며 부산 떨 일이 없어져서 아직까진 얼떨떨하다. 좋은 건가?


3시쯤 까지 형님네로 가야 했고, 시어머니는 2시 30분까지 집으로 오신다고 하셨는데 남편은 오후 2시가 되도록 드르렁 코를 골며 온 방에 밤새도록 고교시절 친구네서 놀다가 아침에 와서는 씻지도 않고 뻗어 구리구리하고 시큼털털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나의 소심한 복수의 서막으로 일단 푹 자게 두었다.


시어머니에게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 게 이리 꿀잼인지 지금껏 모르고 살았다니 복수혈전 2탄은 이걸로 대충 마무리 짓고 하필 가족 모임을 앞두고 밤새 놀다 온 남편을 향한 3차 복수의 칼날을 갈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나에게 말을 거는 캐나다인 시어머니의 모든 질문에 최소한으로 대답만 하니 밀폐된 차 안에서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고 그 냉랭하고 어색한 분위기는 고스란히 남편이 떠안았다.


내가 매번 떠벌떠벌 차 안에서 정적이 생길 틈을 안 주고 시어머니랑 대화하고 해서 시어머니의 질문공세를 온전히 혼자 감당하려면 압박면접에 대응하는 취업준비생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남편은 몰랐을 테다.


복수는 계속된다. 본인이 막내이고 싶었는데 남편이 태어나면서 막내 자리를 너무 빨리 내려놓으며 어린 시절 남편과 제일 경쟁구도였던 남편의 셋째 형과 맥주를 마시면서 남편 흉을 보는 보는 건 시어머니에게 일러바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즐거웠다. 시어머니가 남편을 감싸주기 시작하면서 일러바치는 재미가 푸스스 사그라졌었는데 역시 고소해하는 사람이 있으니 씹는 재미가 두 배다. 벌써 기분은 다 풀렸지만 시댁식구들 상대로 오징어 대신 남편을 안주로 씹어대니 맥주가 술술 들어갔다.


이탈리아 이민자 집안 출신답게 첫째 형님의 부인은 손도 크고 음식도 먹음직스럽게 맛깔스러웠다. 어디서 뷔페식당에서 쓸법한 장비까지 대여해서 차려낸 부활절 식사 차림은 적어도 30명은 거뜬히 대접하고도 남을 분량이었지만 이러저러한 다른 일로 오지 못한 친척들도 있어 남은 음식이 많았다. 제사 지내고 남은 음식 싸주듯이 바리바리 싸준 음식을 양손 가득 들고 집에 오는 길 차 안 분위기는 유쾌했다.


오늘 맛있는 거도 많이 먹고 욕도 찰지게 많이 얻어 먹은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전에 꼭 씻고 자라는 잔소리를 끝으로 오늘의 냉전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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