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드디어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간다. 뭔 휴일이 이렇게 많아 구시렁거리던 때가 엊그제인데 막상 끝이 난다니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하다. 늦은 점심을 든든히 먹고 간식거리를 싸서 에드먼턴 Rivervally로 하이킹 가는 길 재킷이 없어도 될 정도로 햇볕이 따사롭다. 영상 5도까지 올라가다니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완연한 봄기운에 길가에 쌓여있던 눈도 많이 녹았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는 여전히 칼바람에 영하의 온도이기에 방심할 수는 없다.
둘째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지나서 Rivervally로 가는 길,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카페가 보인다. 무려 18년 전 캐나다에서 결혼식 하기 며칠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급히 귀국한 전 여자친구를 위로한답시고 만나는 자리에 차마 나랑 동행하기는 분위기상 좀 그래서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근처에서 혼자 시간을 죽이던 그 카페였던 것이다.
한 번 생각이 나니 그날의 기억이 봇물 터지듯 밀려왔다. 혹시나 남편의 전여자 친구와 대면했을 때 발생할 수도 있는 기싸움에 밀리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힘을 준, 누가 봤으면 무대의상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과한 핼러윈 때나 입을 법한 그런 Gothic블랙 미니 드레스를 입고 목에 초커까지 하고 나가선 카페 테라스에 책도 한 권 없이, 하다 못해 핸드폰도 없이 거의 두 시간여를 혼자 앉아 있던 그날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보이는 외관을 마주하니 반가운 마음까지 들었다.
남편은 전 여자 친구에게 결혼생각이 없다고 평생 결혼 같은 건 안 할 거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놓고는 그녀와 헤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한국으로 오고 나를 만나 이듬해 결혼까지 했으니 그녀로서는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결혼 선물로 결혼식 피로연 비디오를 본인이 찍겠다고 해놓고 제 시간에 나타나지도 않고 한 참 늦게 와서 주요 하이라이트였던 밸리댄서 공연 및 라이브 공연은 하나도 안 찍고 비디오카메라를 그냥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등 대충 엉망으로 찍은 테이프를 준 건 좀 치졸했다고 본다. 전 여자 친구뿐만 아니라 무려 전 여자 친구의 어머니까지 결혼식에 초대해서 찍은 내 결혼사진은 볼 때마다 좀 부들부들 눈에 힘이 들어간다.
전 여자 친구의 어머니와 지금 시어머니께선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날 결혼식 직전 남편에게 내 사위 될 줄 믿고 있었는데 이럴 줄은 몰랐다고 한탄하는걸 못 들은 척하느라 괜히 크게 웃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걷다 보니 커다란 야외놀이터가 보여 오늘의 하이킹 목적지를 여기로 하고 간식을 꺼내고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터에 흥분해서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에도 올라간다. 눈이 녹아 드러난 풀밭 어귀에 누구나 바비큐를 할 수 있도록 바비큐그릴이 설치되어 있는 피크닉 장소가 보인다. 여름에 도시락 싸서 소풍 오면 좋을 것 같아 장소를 기억해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