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20230120

에드먼턴, 캐나다

by Martine sk Mardres

한참 전부터 엄마가 싸 주는 김밥이 먹고 싶다고 하는 아이들의 성화를 뒤로 하고 재료 구하기도 녹록지 않다는 핑계를 대면서 이리저리 미루다가 캐나다 학교 다닌 지 두 달 여만에 처음으로 가는 현장 학습이라고 김밥을 점심으로 꼭 싸가고 싶다는 둘째 아이의 청을 드디어 들어주기로 했다.


현장학습 학부모 도우미로 자원봉사 지원했기에, 내 도시락까지 총 4개를 준비해야 하니 이참에 김밥 싸지 뭐 하고 호기롭게 시작했다. 그 전날 미리 채칼이 없어서 한 참을 칼질해서 마련한 당근 채와 오이를 단촛물에 절여놓고 단무지는 사놓지 않았으니 패스, 매번 김밥 쌀 때마다 한국에서 손쉽게 사던 우엉채는 꿈도 못 꾸고, 한 달쯤 전 한인마트에서 사 두고선 아끼느라 냉장고에 얼려 둔 어묵을 해동해 두었다.


새벽 5시 반 기상. 미리 해 둔 밥을 데워서 참기름, 맛소금, 아끼던 홍게간장 넣어 비벼 두고 계란 지단, 어묵 조림 만들어 본격적으로 김밥 10줄을 싸는데 한 동안 안 하다가 오랜만에 하자니 재료 배분에 실패했다. 마지막 김밥 3줄은 계란 지단도 없고 어묵조림도 없고 허둥지둥 어쩌지 하다가 냉장고에 묵혀 둔 매운 무말랭이가 생각났다. 아싸... 난감한 순간에 위기 탈출한 나 칭찬해.


매콤한 무말랭이 김밥이 입에 잘 맞았지만 점심 먹고 바로 양치하지도 못하는 환경일 테니 입에서 매콤한 김치양념 냄새나는 게 꺼려져서 바로 잘라 아침 겸 먹었더니 너무 맛있는 거다. 아이들도 김밥 싸는 소리에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옆에서 김밥 꽁다리를 주워 먹기 시작한다. 원래 김밥 쌀 때 옆에서 엄마가 입에 넣어 주는 꽁다리가 제일 맛있는 법이다. 이렇게 내가 어려서 겪었던 즐거웠던 추억을 아이들에게도 물려준다.


속재료를 네 가지밖에 못 넣었고 그 마저도 모자라서 냉장고 묵은 무말랭이 탈탈 털어 넣은 김밥이지만 맛있게 먹어 주는 가족들이 있어 행복하고, 내 귀하디 귀한 어린 시절 흘러간 세월 속 반짝이는 소중한 순간을 다시 꺼내 아이들과 나누었기에 기쁘다.


멋없이 실용적이기만 한 플라스틱통이지만 정갈하게 나누어 담고 아침부터 서둘렀기에 커피 한잔하고 나갈 여유는 생겼다 싶어 좋아했건만, 현장학습에 배낭이나 책가방은 못 가져가고 도시락 가방만 들고 가야 된다고 다 싸놓고 나니 말해주는 딸내미덕에, 내 도시락 통은 포기하고 손바닥 만한 핸드백에 들어가도록 1/3 덜어내고 부피를 줄여 알루미늄 포일에 감싼 김밥을 내 도시락으로 준비한다. 이 똥강아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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