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20230406

에드먼턴, 캐나다

by Martine sk Mardres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집중이 바로 흐트러진다. 백색소음이 집중을 도와준다는 데 사람 목소리가 들어가지 않은 악기 연주나 진짜 자연의 소리까지는 괜찮은 듯하다. 뇌가 자동으로 말소리나 노래가사에 바로 반응해 버린다. 속으로 흥얼흥얼 거리기 시작해 버리면 게임 끝. 그냥 휩쓸려버린다.


무슨 소린지 하나도 알 수 없는 외국어가 아니고서야 책을 읽을 수도 없다. 멀티태스킹이 불가하다. 뇌를 나누어 쓸 수가 없다. 귀에 이어폰 꽂아두고 음악 들으며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다. 공부하는 척만 했을 뿐이다.


아이들 있는 집에는 컴퓨터를 거실에 두라고 다들 조언을 하기에 동의하는 바여서 그렇게 두고 썼더니 컴퓨터가 장악한 거실은 당연하다는 듯 항상 라디오가 켜져 있어 음악과 디제이가 떠드는 소리로 꽉 차 있다. 책을 보거나 새로 시작한 외국어 공부를 하거나 뭔가 집중을 요하는 일을 당최 할 수가 없어서 고심 끝에 지하실로 컴퓨터를 옮기기로 한 이후부터 애들은 지하실 붙박이 지박령이 되어 버렸다.


아직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아이들이다 보니 스마트폰으로 생기는 갈등 요인은 없다. 다만 컴퓨터로 그 갈등의 대상이 바뀐 것뿐이다. 신세계도 이런 신세계가 있나 아이들은 컴퓨터가 주는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당연한 소리이긴 하지만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은 스마트폰 보다 훨씬 다양하다. 하지만 볼 때마다 게임을 하고 있으면 그런 항변이 딱히 와 닫지는 않는 데다가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고 밥 먹을 때나 지상으로 올라오고, 잘 시간이라고 윽박지르지 않으면 밤새 붙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겨우 옷가지 몇 벌과 아끼던 책 몇 권만 추려서 가지고 온 터라 한글로 된 책은 고스란히 다 두고 전자책의 형태로 한국에서 쓰던 핸드폰에 담아왔기에 느릿느릿 한 페이지 읽는데도 한참 걸리는 영어책을 보다가 기운이 빠지고 성질이 나기 시작하면 한글로 된 이야기에 속절없이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애들 잘 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후다닥 지하실로 내려가서 지박령들을 억지로 컴퓨터 스크린에서 떼 놓느라 매번 서로 감정이 상한다.


아이들의 컴퓨터 사용시간에 왜 이리 너그러운지 모르겠다고 남편한테 말을 꺼냈다가 지금 나를 힐난하는 거냐고 말의 뉘앙스가 그렇다면서 부부싸움으로 번졌다. 애들 지하실에 아예 못 내려가게 해야 한다니까 왜 이리 극단적이냐며 뭐든 무조건 못하게 한다고 될 일이냐고 스스로 생각해서 조절할 수 있도록 옆에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자율성을 지켜줘야 하는 거라고 내가 애들이랑 시간을 보내기는 하냐고 오히려 나를 책망한다.


서로 목소리가 커지고 감정이 격해지며 아이들이랑 보드게임을 하거나 공부를 봐주고 같이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어주는 등 이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전혀 노력하지도 않고 자기가 시간을 쪼개 학교 갔다 와서 피곤하고 그냥 쉬고 싶은 와중에도 조금이라도 더 아이들이랑 그런 시간을 보내려고 애쓸 때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서 무조건 애들한테 컴퓨터 쓰지 말라고 하면 어떡하냐고 나의 부조리함을 지적한다.


더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맞지 라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내 한 몸 편한 것만 찾다가 이지경이 되었다.


라테는 말이야... 컴퓨터가 뭐야 제대로 된 티브이도 없고 옆에서 같이 그런 시간 보내 주는 어른도 없었어! 생계유지에 급급해 부모님은 그런 정신적 허기까지 챙겨줄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고 변명한다. 아예 컴퓨터를 못쓰게 하면 다른 걸 찾아 하겠지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꺼내게 만들었다. 하룻밤 자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 어처구니없이 극단적이다.


청소년기에 혼자 시간을 보내는데 익숙했기에 형성되었을지도 모를 나의 타협하기 힘들어하고 중간이 없는, All or Nothing이라고 남편이 정의 내린 나의 극단적인 성격으로 갈등요소를 타파하는 데 있어서 직접 부딪쳐서 서로가 최대한 양보하고 만족하는 타협점을 찾기보다는 갈등요소 자체를 아예 없애려고 하는 무식한 방법을 자꾸 들이댄다.


남편과 상의해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게 결혼생활 중에서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나의 질 나쁜 독단적인 성격은 남편이 나랑 함께 하면서 가장 힘들어하는 나의 최대 단점이다. 알고 있기에 그 부분을 상쇄하기 위해 내가 다른 부분에서 많이 양보하는 편이다.


감정이 격해 있을 때는 좋은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 하루 지나고 나서 가족회의를 하기로 하고 일단 Sleep on it!




요맘때는 참 나도 좋은 엄마였던것 같은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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