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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tine sk Mardres Apr 11. 2023

#88 20230410

에드먼턴, 캐나다

어색함을 뒤로하고 말이라도 서로 주고받을 정도로 경계심이 풀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자그마치 세 시간, 장난까지 치기 시작하고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가 될 정도가 되자마자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P.E.I에서 잠시 부활절 휴가를 보내기 위해 에드먼턴으로 들린 사촌 Beowulf와 Loki의 나이 차는 고작 3개월로 인종을 넘어서서 키, 성격, 외모까지 비슷하다. 완전 신기한 유전자의 신비로움이다.


돌아가신 남편의 둘째 형과 남편은 서로의 첫 아이 이름을 참으로 거하게도 지었다. 서로 상의하지도 않았는데 두 아이들의 이름이 풍기는 분위기가 신화적이다. 베어울프는 8세기 초 고대영어로 써진, 주인공인 영웅 베어울프의 일대기를 그린 영문학 최초의 서사시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컴퓨터 게임 속 캐릭터로도 알려져서 북유럽 신화 속 인물이자 마블 세계관에 편입된 로키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이름이다.


첫 돌 겨우 지난 아이를 두고 대장암으로 사별한 남편을 대신하며 싱글맘으로 아이를 12년간 혼자 생계도 책임지고 육아도 병행하느라 얼마나 동동거리며 애썼을까 싶다. 나보다 나이도 몇 살 어린 걸로 아는데 벌써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 버렸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만만해 보이지 않는 강인한 인상의 그녀를 가까이서 오늘 하루 종일 지켜보면서 내가 만일 그녀의 상황이었다면 과연 그녀만큼 잘 해낼 수 있었을까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다.


로열앨버타뮤지엄 RAM 에서 수리 후 재개장하기 전에 한동안 근무했었다는 그녀의 이력이 이채롭다. 재개장한 후에는 첫 방문이라 오늘 개장하자마자 와서 문 닫을 때까지 함께 했다. 박물관 연간회원권을 끊어 놓아 벌써 몇 번이나 왔지만 설명 하나하나 다 읽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해 보는 아이들과 남편 덕에 나도 이제 혼자서 유유자적하며 박물관에서 혼자 시간을 잘 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녀와 함께 하는 첫 가족모임이 볼링장이었고 두 번째는 박물관이라니 이 분 참 사교성 떨어지고 세균공포증도 있는 까칠한 성격치고는 사교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현명하게 장소선택을 잘 한 듯하다. 대화를 안 해도 어색하지 않고 대화를 하고 싶을 때만 선택적으로 할 수 있고 아무 말 안 하고 같은 공간에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장소를 이렇게 잘 고르다니 요령 있는 그녀의 사회생활 참 본받을만하다.


혹시나 해서 한국 초코파이를 몇 개 가져갔는데 거절하지 않고 초콜릿과 마시멜로우 조합을 아주 좋아한다고 하며 맛있게 먹어 주는 그녀에게 오히려 고마웠다. 실내뿐만 아니라 바깥에서도 KF94 정도로 두꺼운 마스크를 하루 종일 쓰고 손잡이라도 만졌다 하면 바로 손세정제를 꺼내던 그녀는 나와 6시간 정도를 같이 한 후에야 박물관 밖에서 마스크를 벗고 같이 아이들 나란히 앉은 사진을 찍으며 다음 휴가를 기약했다.


가족이라서 억지로 엮일 수밖에 없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사별한 남편의 빈자리를 같이 메꿀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이놈의 땅덩이가 넓어도 너무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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