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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tine sk Mardres Apr 10. 2023

#87 20230409

에드먼턴, 캐나다

교회를 가지는 않지만 부활절, 이스터는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캐나다인 남편이 빼먹지 않고 꼭 챙기는 명절이기에 해마다 이스터 준비로 하얀 계란을 찾아 마트를 몇 군데나 돌고 온갖 토끼로 된 장식품을 사 모아 집을 개판이 아닌 토끼판으로 만들고 초콜릿을 녹여 토끼 모양 틀에 담아 굳히고 식용색소를 색깔별로 해외직구로 구매하는 등 이스터는 한국에서 몇 주 전부터 준비해야 하는 손이 많이 가는 연례행사였다. 


내 손이 많이 가는 건 아니고 남편 손을 일일이 거쳐야 하는 거니 나는 그저 식용색소나 직구해 주고 온라인으로 하얀 계란 파는 곳의 정보를 찾아 주는 걸로 내 할 일 다 했다고 뒷짐 지고 있으면 남편이 알아서 계란 삶고 아이들과 함께 장식하고 사람들 많이 안 다니는 한적한 공원이나 아파트 뒷마당 같은데 계란 숨기고 찾고 하며 소풍을 즐기는 걸로 이스터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맛보는 걸로 의의를 두곤 했다. 


캐나다 명절이니까 나는 그저 옆에서 눈치껏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를 하며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으로 남편이 깔아놓은 판에 숟가락을 살짝 얹으며 대리만족하는 걸로 족하다. 설날과 추석에는 내가 앞장서니까 한국 명절은 내가 캐나다 명절은 남편이 주도하며 남들보다 두배로 특별한 날과 기념일을 보내면서 일부러 기억할 만한 일들을 자꾸 만든다. 


토끼모양 초콜릿을 만들고, 삶은 하얀 계란을 알록달록 식초와 식용색소 탄 물에 담가서 물들이고 장식하고 난 뒤 국제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다른 가족들과 연계해서 공원에 모여 에그헌트 겸 피크닉을 같이 하기도 했는데 돌이켜 생각하면 한국에서의 참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캐나다로 이주하고 나니 하얀 계란 아닌 걸 찾는 게 더 힘들 정도로 흔하게 구할 수 있고 식용색소도 슈퍼마켓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하는 베이킹용품코너에서 싸게 소용량으로 여러 다양한 색깔을 한 번에 살 수 있고 아예 토끼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초콜릿이 이스터를 맞아 지천에 깔려있다. 시간과 노오오오력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가 이상하게 좀 시들해진 기분이다. 


뭔가 힘들게 구한 걸 뿌듯해하며 소중한 지인들과 나눈다는 느낌이 없어져서 그런지 애틋함과 특별함은 사라지고 그냥 상업성에 휘둘린 듯하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 보냈던 이스터가 더 특별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한인마트에서도 안 파는 한국에서 힘들게 들여온 귀한 재료로 명절을 맞아 평소에 먹기 힘든 그럴듯한 한식을 준비해 친하게 지내는 한국분들과 맛있게 먹으면 다시 그런 특별함을 느낄 수 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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